[지평선] 카드사 노조의 항변

입력
2019.04.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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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신용카드사가 다 죽게 됐다며 이번엔 카드사 노조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카드결제 수수료 인하는 자영업 위기 대책으로 강구된 것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급등으로 자영업이 다 죽게 됐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 불만을 달래기 위한 방안으로 나왔다. 안 그래도 자영업계에선 카드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터라, 정부로서는 양수겸장의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자영업 살리자는 시책이 카드사엔 독약이 되어 넘어간 게 문제다.

□ 지난해 11월 확정된 중소상공인을 위한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의 골자는 우대 수수료율 구간을 연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확대한 것이다. 아울러 매출 구간별로 수수료를 인하했는데, 인하폭은 5억~10억원이 신용카드 0.65%포인트 체크카드 0.46%포인트, 10억~30억원이 각각 0.61%포인트와 0.28%포인트다. 그 결과 24만2,000곳의 중소 자영업체들이 연평균 459억원, 1개 업체당 약 200만원씩 수수료를 절감케 됐다. 정부는 대신 카드사들로 하여금 대형가맹점 수수료를 높여 손실을 보전하라고 했다.

□ 대형가맹점과 중소가맹점의 수수료 불균형이 늘 문제가 돼 왔기 때문에 일리가 없지 않은 방안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부는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 문제는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의 개별협상으로 어물쩍 넘겼다. 그게 문제였다.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자 현대자동차 등 강력한 대형가맹점들이 잇달아 ‘가맹계약 해지’를 선언했고, 결국 카드사들은 사실상 백기를 들어야 했다. 손실 보전 없이 중소가맹점 수수료만 낮추게 되자 카드사들의 1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37%나 격감하는 상황에 빠졌다.

□ 실적 악화는 장치산업 성격이 강한 카드업계에서 곧바로 인력감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카드사 노조들은 카드사 직접 고용 인력 1만명, 카드밴사 등 유관업계 종사자 10만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9일 ‘카드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또 한 번 업계 달래기에 나섰다. 저소득층을 위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자영업자가 비명을 지르자, 자영업자 달래자고 카드수수료 인하하고, 카드업계가 들고 일어나자 또 다시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한 번 헛디딘 정책이 ‘땜질 정책’의 악순환을 부른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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