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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은 배우 유해진(왼쪽부터)과 배정남, 차승원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객을 대상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CJ ENM 제공

차승원이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고, 유해진은 생활도구를 뚝딱 만들어낸다. ‘막내’ 연예인은 이들을 도우며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해낸다. 나영석 PD의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을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1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 PD의 신작 ‘스페인 하숙’의 얼개는 이전 ‘나영석 표 예능’과 비슷하다. 차승원과 유해진, 배정남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객을 위한 하숙집(알베르게)를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첫 방송부터 “부담감 없이 편하게 보는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나영석 예능의 동어반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시청자가 가보기 힘든 산티아고 주변의 풍광을 보여주며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나 PD의 이전 작품보다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여행과 먹방을 접목한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나온다.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스페인 하숙’을 세밀히 뜯어보고 다각도로 분석해 봤다.

양승준 기자(양)= “사람 얘기가 없어 아쉬웠다. 나 PD의 전작인 ‘윤식당’ 시리즈에서 제2의 주인공은 ‘손님’이었다. 다국적 남녀노소의 다양한 얘기를 들려줘 이야기가 풍성했는데 ‘스페인 하숙’은 숙식까지 하는 여행객의 얘기를 찾기 어렵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고 싶은 이들이 순례길을 찾곤 한다. 거리로 나선 이들의 사연은 다양할 것이다. 유해진 등이 순례객과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주고받았으면 낫지 않았을까. 현지 주민과 단절된 하숙집에서 연예인 중심으로 전개되니 프로그램이 단조로워 보인다.”

김표향 기자(김)= “비슷한 생각이다. ‘윤식당’이 낯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사랑방 느낌이었다면, ‘삼시세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갖은 수로 밥을 지어먹는 프로그램이었다. 슈퍼마켓을 보고 문명세계를 접한 것마냥 즐거워하고, 만재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요리를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밥을 해먹는 이들을 보는 게 재미 요소였다. ‘스페인 하숙’은 ‘삼시세끼’와 같은 고난이 없고, ‘윤식당’처럼 방문객의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조용한 ‘힐링’이라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tvN 예능프로그램 '스페인 하숙'. CJ ENM 제공

양= “발견의 재미가 전작보다 덜하다. ‘삼시세끼’는 차승원과 유해진이 그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매력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었다. ‘윤식당’은 원래 요리에 문외한이었던 윤여정이 식당 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알베르게에 하루 머물다 가는 순례객에게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무리수였을 것이지만, ‘스페인 하숙’은 특별하다 할 이야기가 없다.”

강진구 기자(강)= “이런 전개가 이어진다면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끝까지 볼 지 미지수다. 음식을 준비하고, 크고 작은 생활도구를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하루하루로만 이야기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창 여정 중인 여행자에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리였다면, 차라리 순례길 도착지에 하숙을 차리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굳이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지역이 배경이 돼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김= “출연자들의 시행착오가 없는 점도 재미를 떨어뜨린다. ‘삼시세끼’는 출연자들이 그날그날 수렵과 채집으로 의식주를 급조했다면, ‘스페인 하숙’은 모든 것이 준비돼 있어 순식간에 해결된다.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은 돌발 사건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양= “최근 CJ ENM 예능이 모두 ‘나영석화(化)’되고 있다. 해외에 나가서 요리하는 내용의 예능프로그램이 이달 tvN에서만 ‘스페인 하숙’과 ‘현지에서 먹힐까?’ 두 개가 있다. 곧 ‘강식당2’도 나올 예정이다. 최근 CJ ENM 보유 채널의 프로그램을 보면 ‘커피 프렌즈’(tvN), ‘국경없는 포차’(올리브) 등 모두 연예인이 음식을 대접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CJ는 해외에서 밥 해 먹는 프로그램뿐”이란 비판이 나오겠는가.”

배우 박중훈(아래)이 CJ ENM 산하 올리브의 ‘국경없는 포차’ 촬영장에서 샘 오취리, 이이경 신세경(왼쪽 위부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CJ ENM 제공

김= “과거에는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 방송에서 하지 못했던 참신한 프로그램을 많이 선보였다. tvN 초창기 프로그램인 ‘재용이의 순결한 19’와 ‘막돼먹은 영애씨’, ‘롤러코스터’ 모두 기존에 찾아볼 수 없었던 포맷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명한 PD가 KBS에서 CJ ENM으로 이적한 이후 처음 발표한 ‘세 얼간이’도 네티즌과 소통하는 실시간 생방송 예능을 이용해 당시에는 상당한 파격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 CJ ENM 예능프로그램은 개성이 없다.”

양= “CJ ENM 프로그램 모두 나 PD가 만든 포맷에 머물러 있다. 어디론가 떠나거나, 아니면 밥을 먹는 것뿐이다. 나 PD가 CJ ENM에 강렬한 빛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짙은 그림자도 드리운 셈이다. 과거에는 시청률 1%만 나와도 성공이었다면, 지금은 5%는 무조건 나와야 한다 식의 압박감에 도전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듯하다.”

강= “아직까지는 대중이 나영석 표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는 법이다. CJ ENM이 ‘포스트 나 PD’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예능프로그램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 ‘스페인 하숙’이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다 해도 새로운 포맷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CJ ENM 뿐 아니라 나 PD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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