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마음대로 되는 일 없다지만, 최고봉은 축구공이더라

입력
2019.04.10 04:40
수정
2019.04.10 11: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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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축구 ‘풋살’ 직접 뛰어보니…

멋대로 움직이는 공에 쩔쩔… 어설픈 슈팅에도 기분 짜릿

한국일보 문화부 한소범(왼쪽), 신지후 기자가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미니 게임을 뛰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국일보 문화부 한소범(왼쪽), 신지후 기자가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미니 게임을 뛰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저요, 학생 땐 이 정돈 아니었는데요, 진짜로요.”

멋쩍게 웃으며 변명했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뻣뻣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나 손으로 하는 운동엔 자신 있는 편이다. 피구, 농구, 배드민턴, 탁구, 볼링 같은 것 말이다. 악바리 근성도 꽤 있다. 고3 때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만 있는 친구들을 관객 삼아 홀로 줄넘기 연습에 몰두한 덕에 첫 수업 때 못했던 일명 ‘쌩쌩이’(줄넘기 이중 뛰기)를 3번째 수업에서 해내기도 했다. 체력장 오래 달리기 종목에선 매년 팀에서 1등, 적어도 2등 안으로 결승 선을 밟았다. 내가 피구공을 잡으면 상대편은 “오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발로 하는 운동이어서일까, 아니면 세월 탓일까. 6일 오전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풋살장에서 여성 축구모임 ‘FC슛탱글’과 함께 풋살에 도전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스텝, 패스 훈련부터 미니 풋살 게임(전ㆍ후반 20분)까지 뛰었다.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다는 후배 기자 한소범씨와 그래도 공차는 건 자신 있다는 인턴기자 김의정씨도 함께였다.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한국일보 신지후 기자가 공 다루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한국일보 신지후 기자가 공 다루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세상에 맘대로 되는 것 없다더니

발로 공을 굴려 본 건 거의 10년 만이었다. 연습 파트너와 공을 주고받는 간단한 훈련인데도 쩔쩔맸다. “괜찮아요, 잘 하고 계세요.” ‘슛탱글’ 회원인 파트너 강다현씨의 거듭된 응원이 민망할 정도로 공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자세를 잡아주려 다가오는 코치의 발 소리가 들리면 더욱 긴장했다. 발바닥으로 공을 살짝 끌어와 코 앞 상대에게 넘겨주면 되는데, 공이 저 멀리로 굴러가 버리기 일쑤였다.

‘인사이드 킥’ 훈련은 유난히 당황스러웠다. “오른 발목을 바깥으로 살짝 돌리고 발가락을 위로 든 상황에서 발날 중심부로 공을 슬쩍 밀어주기만 하면 공은 직선으로 뻗어갑니다.” “그리 어렵지 않다”는 코치의 말이 야속하게도, 공은 자꾸만 붕 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더니, 축구공은 그 중 최고봉이구나.”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FC슛탱글 회원들과 본보 기자들이 미니 게임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FC슛탱글 회원들과 본보 기자들이 미니 게임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미니 게임을 뛰어보다

한 시간의 기초 훈련 시간이 끝나자 마자 실전이었다. ‘이제 겨우 직선 패스에 익숙해졌는데 벌써 게임이라고?’ 두려움이 머리 속을 휘젓는데, 곁에 선 ‘슛탱글’ 회원들은 어서 호루라기를 불어 달라는 눈빛으로 일제히 코치를 바라봤다.

“삐익!” 코치가 입으로 소리를 낸 순간 공이 내 쪽으로 굴렀다. 공보다 한참 뒤에 서 있던 ‘슛탱글’ 회원 안은비씨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 와 다리 사이로 공을 빼 갔다. “공 끝까지 보고!” 당황해서 0.5초쯤 머뭇거리는 사이 코치의 호령이 떨어졌다. ‘공이 오지 않더라도 무조건 빈 공간만 지키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기로 했다.

여성들이니 적당히 몸을 사리며 경기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회원들은 가로 45m, 세로 25m 크기의 풋살장을 쉼 없이 전속력으로 달렸고, 거친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서로 부딪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가도 어느새 골대 앞으로 공을 몰았다. 세게 찬 공에 배를 맞아 숨이 안 쉬어지는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공을 차다 발목이 꺾여 주저 앉은 이문경씨는 “병원에 가겠다”는 말 대신 “저 운동 더 못하면 어떡해요”라는 걱정부터 했다.

경기는 4대 3으로 끝났다. 나와 후배기자는 어설픈 슈팅 한번씩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몇 살 어린 인턴기자는 팀에 1골을 선사했다. “헛발질은 여러 번 했어도, 유효한 패스는 몇 번 있었잖아.” 후배 기자와 서로 위로하며 뒷목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김의정(오른쪽) 인턴기자가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미니 게임을 뛰며 공을 모는 상대를 쫓고 있다. 이한호 기자
김의정(오른쪽) 인턴기자가 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풋살장에서 미니 게임을 뛰며 공을 모는 상대를 쫓고 있다. 이한호 기자

◇얼마 만에 듣는 “나이스”인가

가장 인상 깊은 건 풋살이 ‘소통의 운동’이라는 점이었다. “말이 너무 없어요! 서로 이야기를 해!” 코치가 경기 중 수없이 외친 말이었다. 응원과 소통의 룰도 있었다. 공을 자신에게 달라고 할 땐 “헤이!”, 팀원이 상대방의 공을 잘 뺏거나 쳐냈을 땐 “나이스 컷!”, 유효한 패스가 나왔을 땐 “나이스!”. 나의 어설픈 몸 쓰기에도 팀원들은 “나이스!”를 열심히 외쳐 줬다. 박수도 쳐 줬다. 이렇게 열렬하게 칭찬 받은 게 얼마만인가! 칭찬은 별의별 동물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전반전에는 말이 적었던 우리팀의 실점이 많았고, 후반전에 말이 많아지면서 득점을 거듭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느껴지는 묘한 성취감도 좋았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과는 다르게 온 몸의 감각을 쓰는 기분이 짜릿했다. 축구는 ‘발’을 쓰는 운동인 줄만 알았는데, 게임 후에 손이 부어올라 끼고 있던 반지를 빼야 했을 정도였다. 방에 문학 책을 쌓아놓고 읽는 것을 유일한 취미로 삼고 사는 후배 기자는 다음 달부터 축구를 시작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란다. ‘골 맛’을 제대로 본 인턴기자는 소극적인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저돌적인 진가를 이제서야 알아냈다고 말하며 웃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김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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