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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녀 땅콩회항’ 이후 이미지 추락… 차녀 물컵ㆍ부인 폭언 이어져 
 횡령ㆍ배임ㆍ사기 등 혐의로 재판… 20년 대한항공 경영권 잃기도 
1998년 최첨단 운송선인 한진 오슬로호 명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조중훈 회장 일가. 왼쪽부터 4남 조정호, 3남 조수호, 조 회장, 장남 조양호 회장, 차남 조남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수난사는 이제 막을 내리는 것일까. 부인과 딸의 연쇄 ‘갑(甲)질’ 논란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고, 횡령ㆍ배임 혐의로 경찰과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는 수모를 겪었으며, 급기야 20년간 지켜왔던 대한항공 경영권까지 내놓아야 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급작스레 별세했다는 소식에 파란만장했던 조 회장 일가 수난사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 전 사과를 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큰딸 조 전 부사장 사건과 관련해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 회장의 최근 5년은 결코 평탄치 못했다.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대한항공과 조 회장의 이미지 추락에 결정타였다. 그 해 12월 5일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항공기 일등석에 타고 있던 조 전 부사장이 견과류인 마카다미아 서비스 과정을 문제 삼으며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돌려버린 사건이다. 당시 조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아 죄송하다.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용서를 다시 한 번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항공은 마카다미아에 빗대 ‘땅콩항공’이란 오명이 따라붙었다. 조 전 부사장은 항공보안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2심에서야 겨우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2018년엔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로 한진 일가는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3월 16일 조 전 전무가 본사에서 회의를 하다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고 음료를 뿌리는 등 갑질을 했다는 익명의 폭로가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조 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조 전 전무는 물론이고 3년간 자숙한 뒤 그룹 호텔사업을 총괄하는 칼(KAL) 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막 복귀했던 장녀 조 전 부사장까지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여론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뒤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과 대한항공 직원이 조 회장 일가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불길은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게까지 번졌다. 운전기사, 가정부 등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익명게시판을 통해 연일 추가 제보를 쏟아냈고, 촛불집회를 열어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경영 체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한진 일가에 대한 여론은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악화됐고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 당국의 일가를 향한 집중 수사가 시작됐다.

조 회장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28일 검찰 소환을 시작으로, 검찰청사와 경찰청사를 수 차례 오가며 조사를 받았고, 그 때마다 포토라인에 서는 수모를 겪었다. 그 해 10월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ㆍ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1월 국세청도 조세포탈 혐의로 조 회장을 고발했다.

2월 1일에는 국민연금이 나섰다.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 이날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이 해외 구입 명품을 밀수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날이었다. 이후 3월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조 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하며 20년간 가졌던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한 8일 한 승무원이 조기가 걸린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이 아니라 조 회장의 일생 전체를 그리 평탄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실제 고 조중훈 창업주가 작고한 뒤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을 승계하고 둘째 조남호 회장과 셋째 고 조수호 회장, 막내 조정호 회장이 각각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메리츠금융지주를 이어받는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촉발됐던 게 인생 굴곡의 시작점이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최근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진중공업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고, 셋째 고 조수호 회장이 가져갔던 한진해운도 2017년 파산했다. 부인 최은영 회장이 남편에 이어 한진해운을 맡았지만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고, 오히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각한 혐의로 징역형(1년 6월)을 받았다. 조 회장은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의 알짜 자산인 에쓰오일 주식을 팔아 마련한 자금 등 총 2조원이 넘는 돈을 한진해운에 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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