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입거나 타 죽은 반려견 곳곳에… “대피소로 동반 대피해야”

입력
2019.04.08 16:18
수정
2019.04.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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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한 주택가에서 몸에 화상을 입은 개가 묶여있다. 고성=연합뉴스
7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한 주택가에서 몸에 화상을 입은 개가 묶여있다. 고성=연합뉴스

반려동물을 보유한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지진, 산불 등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원 고성군ㆍ속초시 일대를 덮친 산불로 목줄에 매인 채로 타 죽거나 화상을 입은 반려견들도 속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강원도청에 따르면 지난 4일 시작된 산불로 폐사한 가축, 반려동물 등은 4만2,000여마리에 이른다. 이 중 닭, 오리 등 가금류 가축 피해가 4만400여마리다. 도청은 폐사한 기타 동물 155마리 중 일부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밤에 산불이 주택가를 덮치면서 마당에 묶어 기르는 반려견들 중 일부는 속절없이 화마(火魔)에 당해야 했다. 피해 현장에서 동물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박근하 강원도수의사회장은 “주민들이 미처 데리고 가지 못한 반려견들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집밖에 있던 개들은 화상을 입거나 타 죽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동반 대피한다고 해도 마땅한 구제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시된 ‘비상대처요령’을 보면 ‘애완동물은 재난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 봉사용 동물만 입장이 허용된다. ‘애완동물재난대처법’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지만, ‘친구나 친척들에게 애완동물이 머물 수 있는지’, ‘수의사ㆍ조련사가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등을 알아보라는 수준이다. 또 다른 권고안인 ‘사회재난행동요령’에도 산불 주택가로 확산됐을 때 반려동물 보유 가구가 대응할 만한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7일 강원 고성군 천진초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반려견을 업어 달래고 있다. 고성=서재훈 기자
7일 강원 고성군 천진초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반려견을 업어 달래고 있다. 고성=서재훈 기자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반려동물들의 대피소 출입이 금지돼 반려동물을 보유한 이재민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강원 고성군ㆍ속초시에는 현재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총 19곳의 대피소가 마련됐지만,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별도의 대피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일부 대피소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대피한 이재민들의 입장을 허용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외국 사례처럼 재난대응계획에 동물 대피 방안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성명서를 통해 “미국은 2006년 ‘반려동물 대피와 운송 기준법(PETS Act)’를 제정해 30개 이상의 주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 구조, 보호 및 회복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반려동물을 버리지 못한 반려인들까지 대피하지 못한 사례가 발생한 게 법 제정 배경의 하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몇 년 새 지진, 산불 등 자연 재해가 반복되는데도 동물 피해는 등한시하는 인식은 여전하다”면서 “최소 피해가 예상되는 동물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거나 반려동물과 동반 대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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