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서 12년 일한 박정준씨 “지인 추천 받지만 채용비리는 없어요”

입력
2019.04.1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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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장기 근속… “퇴사하고플 때마다 사내 이직”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독보적인 정보통신(IT)기업으로 만든 비결로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14가지 리더십 원칙’이 꼽힌다. 이 원칙 중 하나가 ‘최고의 인재만을 채용하고 육성하라’다. 실제 세계 최고 인재들이 이 회사를 지원하고, 과도한 경쟁을 겪으며 평균 1년 만에 그만둔다. 그만큼 채용과 실적 평가에서 깐깐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데 실상을 까보면 몇몇 직원에 의해 채용 당락이 결정되고, 심지어 채용 공고 때 직원들에게 ‘지인 추천’을 강력하게 권장한다. 정량화된 채용 기준은, 당연히 없다. 이런 회사에서 강원랜드, KT 같은 채용 비리 의혹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박정준씨는 당분간 직원을 뽑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 같은 플랫폼 덕분에 혼자 사업을 해도 충분하고, 의사결정이 빨라 아마존에서 일할 때보다 업무 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박정준씨는 당분간 직원을 뽑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 같은 플랫폼 덕분에 혼자 사업을 해도 충분하고, 의사결정이 빨라 아마존에서 일할 때보다 업무 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제가 경험한 바로는 채용 비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3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만난 박정준(38)씨는 “아마존에서 일할 때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을 사람 뽑는데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2004년 ‘펙메드(Percific Medical Center의 줄임말, 아마존은 당시 한 병원을 인수해 리모델링 한 건물을 썼다)’시절 입사해 2015년 퇴사한 ‘아마존에서 가장 오래 일한 한인’이다.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IT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이 경험을 정리한 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한빛비즈 발행)를 최근 펴냈다. 아마존 퇴사 후 1인 기업 ‘이지온 글로벌’을 만들어 한국의 놀이매트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아마존 채널을 통해 판매한다.

2004년 박정준씨의 채용 과정을 살펴보자.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닷컴버블이 막 꺼진 2004년 마이크로소프트 등 몇몇 IT기업 면접에서 떨어져 “자존감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닌 그는 영어에 주눅 들어, 전화 면접이 복병으로 작용했다. 일본인 친구가 아마존에 먼저 입사했고 6개월 후 박씨를 추천했다. 박씨는 5명의 직원 앞에서 장장 5시간동안 실무면접을 봤다. “직원 5~8명이 지원자를 면접하는데, 신입이 배치될 해당 팀의 직원이 반드시 3명 이상 들어갑니다. 면접 후 내용과 지원자 장단점을 무기명으로 써서 제출하고, 다음 브리핑 때 채용여부를 회의하죠. 만장일치로 동의한 사람만 뽑습니다.”

물론 이런 채용방식은 기업의 수평문화가 작동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박씨는 경영학과 교재에서나 볼법한 이런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아마존에서 실제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그가 들려주는 일화 한 장면. 취업 후 일주일 만에 박씨가 속한 팀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출시를 앞두고 테스트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회의를 주관하는 일이 박씨에게 주어졌고, 그는 지금 당장 프로젝트 출시가 가능한지를 묻는 부서장에게 “무리”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 론칭이 연기된 그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온 팀장은 베이조스의 13번째 리더십 원칙 ‘강골기질: 반대하되 헌신하라’를 인용하며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사실을 말해 달라”고 격려했다.

박씨가 12년간 경험한 아마존은 “예의나 복장, 어투, 태도 보다 능력과 다양성 그리고 ‘인터그리티(integrity)’가 중시되는 사회”다. 박씨는 “미국에서 많이 쓰는 인터그리티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하게 되는 옳은 일’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 말을 한국어 한마디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경쟁을 부추기는 조직 문화는, 아마존을 독보적으로 근속연수 짧은 기업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저자 박정준 씨. 홍윤기 인턴기자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저자 박정준 씨. 홍윤기 인턴기자

치열한 경쟁에 박씨도 여러 번 퇴사를 고민했다. 그때마다 타 부서로 ‘이직’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른바 ‘사내 이직 제도’다. 아마존에서는 일반 직원이 소속 팀에서 최소 1년을 일하면 다른 부서 매니저와 이직 관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동시에 세 개 부서까지 접촉해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고, 입사 때와 똑같은 난이도와 방식의 면접을 치르고 부서를 바꿀 수 있다. 박씨는 ‘디스커버시 QA’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킨들&디지털 플랫폼’ 등 8개 부서에서 개발자, 마케팅 경영분석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전문가로 일했다.

회사가 천명한 원칙이 공익광고처럼,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비결은 뭘까. “창업주 제프 베이조스의 카리스마 때문이 아닐까요. 애플도,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전문 경영인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창업 당시 내세운 원칙에서 바뀐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제 퇴사 후에 아마존의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베이조스가 없는 아마존은 상상하기 힘들죠.”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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