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생생과학] ‘0.04초의 기적’ 에어백의 숨겨진 원리

입력
2019.04.13 13: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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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백 전개 이미지 사진.
에어백 전개 이미지 사진.

‘I(충격량)=F(충격력)*t(시간)’

독일 이론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핵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특수상대성이론 공식 E=MC2 만큼이나 자동차업계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수식이 있다. 앞 차와 충돌해 발생하는 충격 총량을 차체가 받는 충격력과 이를 전달하는 시간의 곱으로 계산 가능하다는, 이른바 에어백의 기본 원리가 압축돼 있는 기본 공식. 지금부터 얘기하는 에어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계산의 법칙이다.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자동차 탑승객이 받는 상해가 물체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를 나타내는 충격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부분이다. 이는 충격량이 변하지 않는 고정 상수라고 가정할 때 충격력과 시간은 반비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부딪혔을 때 발생하는 충격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결국 승객이 충격을 적게 받으려면 충돌 시간을 길게 해 충격력을 줄여야 한다는 것. 이게 ‘돌발 상황에서 당신의 목숨을 든든히 지켜줄’ 에어백의 역할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무게(질량)이 동일한 계란 두 개를 같은 높이에서 각각 바닥과 방석에 떨어드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된다. 높이와 무게가 같으니 위치 에너지도 같은 테고, 두 계란이 받는 충격력 역시 똑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석에 떨어지는 계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깨질 확률은 훨씬 낮다. 푹신한 방석에 파묻히면서 떨어지는 계란의 충돌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 투수가 던진 공을 포수가 손을 뒤로 빼면서 받거나, 권투선수가 글로브를 끼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다. 간혹 무협 영화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태극권 고수의 무술 동작을 느린 화면으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상대의 공력력을 충돌 시간을 늘여 최대한 줄이는 무림 고수의 고난도 기술인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운전자가 충돌 반동으로 핸들에 부딪히기 전에 에어백을 펼치면 운전자의 충돌시간이 늘어나 충격력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에어백이 실내에서 낙하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객간 에어백 적용
승객간 에어백 적용

 ◇에어백 전개 원리는 

자동차 에어백은 1960년대 미국에서 대중화된 안전벨트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안전벨트는 허리와 가슴만 고정시킬 뿐, 운전자 머리가 자동차 핸들이나 계기판에 부딪히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에어백이 처음 ‘안전벨트 보조용 구속장치’라고 불렸던 이유도 안전벨트를 착용한 상태에서만 ‘보조적으로’ 승객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어백 구성은 쿠션과 인플레이터, 하우징으로 돼 있다. 인플레이터는 쿠션을 부풀리는 질소가스를 발생시키기 위한 화약이 들어있는 장치이며 하우징은 쿠션이 접혀 들어가 있는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동차가 충돌하면 센서는 에어백 전개가 필요한 조건인지를 판단한다. 에어백 작동조건은 에어백 종류와 차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면충돌 에어백은 대체로 정면 30도 이내 각도에서 충돌속도가 시속 20~30㎞ 이상일 때 작동한다.

에어백 작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즉 에어백이 탑승객 목숨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시점에 작동되느냐다.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반동으로 탑승자가 튕겨나가면서 운전석 앞 부분 핸들이나 크래시패드에 부딪히는 시간은 약 0.07초 정도에 불과하다. 에어백이 사고를 감지했을 때 최소한 0.06초 이내에 펼쳐져야 한다는 얘기이고, 그러려면 에어백이 부풀어오르는 전개 속도가 시속 200㎞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에어백이 전개되는데 보통 0.04초가 소요되는데 사람이 눈을 한번 깜박이는 것보다 재빠르다.

이런 폭발적인 힘을 위해 에어백 안에는 나트륨과 질소로 이루어진 아지드화나트륨(NaN3)이라는 무기화합물이 기체 상태로 들어가 있다. 아지화나트륨에는 질소가 65%로 포함돼있는데, 충돌 시에 센서에서 발생하는 불꽃에 의해 0.03초 내에 화합물이 분해되면서 약 60ℓ에 달하는 질소 기체를 만들게 된다. 아지화나트륨은 평상 시에는 섭씨 350℃ 정도 높은 온도에서도 불이 붙지 않고, 충돌이 일어나도 폭발하지 않아 안전하다고 한다. 다만 여기에 산화철(Fe₂O₃)을 섞으면 불꽃에 점화되는 물질로 바뀌게 되는데 운전대에 아지드화나트륨 캡슐과 산화철이 따로 격리돼 보관돼 있으면서 사고 시 자동으로 섞이게 되는 게 에어백 시스템이다.

간혹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에어백에 얼굴을 그대로 부딪힐 경우 오히려 더 크게 다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그런 의심이 생긴다면 당장 에어백 후면을 살펴보길 권한다. 그 곳에 3, 4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에어백을 팽창시킨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벤트 홀’(Bent Hole)이다. 자동차 충돌 후 탑승자가 전면 유리창 쪽으로 튕겨 나가는 사이, 에어백이 팽창해 전체적인 모양을 만들어준 가스가 벤트 홀을 통해 밖으로 방출되면서 탑승자 머리가 ‘충분히 안전할 만큼’ 푹신해지게 되는 것이다.

 ◇진화하는 에어백 

최근에는 다양한 충돌유형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첨단 형태의 에어백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선루프 에어백이다. 자동차 천장에 창문을 내는 선루프는 내부를 밝게 해주고, 고속주행 시 환기도 가능해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차량 전복 시 탑승객의 신체가 선루프를 통해 밖으로 이탈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선루프 에어백은 전복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 회전각의 변화를 읽어내, 에어백을 마치 커튼처럼 선루프 양 옆의 레일을 따라 길게 펼쳐 전개시킨다. 전개 시간은 역시나 0.08초에 불과하다.

프리미엄 차를 중심으로 승객 간 에어백도 장착되는 추세다. 전방이나 후방 충돌이 아닌 옆 방향에서 충돌이 가하질 때 승객 간 내부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다. 차체 옆을 들이받는 횡방향 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충돌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탑승자는 전방 또는 사이드 에어백 보호를 받지만, 옆 사람은 관성에 의해 동승자의 어깨나 머리 등에 부딪혀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승객 간 에어백은 이 같은 탑승자들을 에어백으로 둘러싸듯 감싸는 형태다.

자전거용 에어백도 나왔다. 물론 자전거에 설치하는 것은 아니다. 탑승자 목에 목도리처럼 두르는 형태로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차 에어백처럼 가스가 채워지면서 헬멧 모양으로 머리를 보호해 준다. 전개 속도는 0.1초에 불과하다. 자전거용 헬멧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에어백은 목에 두르고 다니기만 하면 돼 매우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선루프 에어백을 개발하는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전자제어기술이 발달하면서 여러 종류의 센서를 통해 자동차 탑승객 위치와 앉은 자세, 안전벨트 착용 유무 등까지 판단해 에어백을 전개시키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며 “탑승객 체형에 맞게 적재적소에 에어백을 채워 넣을 수 있어 사고에 따른 상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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