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핫&쿨] “페미니즘은 독약”…인도네시아 反여성단체 캠페인 논란

입력
2019.04.05 06:00
수정
2019.04.08 09:5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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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인증 사진.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악마로 만든다 등을 페미니즘이 필요없는 이유라고 적었다. 인터넷 캡처
'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인증 사진.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악마로 만든다 등을 페미니즘이 필요없는 이유라고 적었다. 인터넷 캡처

‘페미니즘 삭제’ ‘서구의 불경스런 사상’ ‘가족을 악마로 만든다’

인도네시아 일부 여성들이 반(反)페미니스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에 돌입했다. 현지 여성단체와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20대들은 ‘찻잔 속 미풍’에 불과하다며 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런 자유로운 반작용조차 페미니즘이 수십 년의 노력 끝에 일궈낸 특권이며 결국 세상은 여권 신장의 방향으로 시나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탄파 페미니스(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고 밝힌 반(反)여성단체는 지난달 17일부터 SNS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검색용 키워드) ‘#Uninstall Feminism(페미니즘 삭제)’ ‘#Indonesia Tanpa Feminis’ 같은 선언과 함께 서명이 들어간 인증 사진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이 없는’을 뜻하는 탄파(Tanpa) 운동은 ‘인도네시아 탄파 FPI(이슬람수호전선)’ ‘인도네시아 탄파 JIL(자유이슬람네트워크)’ 등 그간 극단주의 무슬림을 반대하는 방법으로 활용됐다.

익명의 여성은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악마로 만들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페미니즘 독으로부터 자신들의 세대가 해방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이라는 글과 함께 히잡을 쓴 여성 수십 명이 주먹을 불끈 쥔 사진도 있다. ‘페미니즘은 이슬람의 가치에 반하는 불경스러운 서구 사상’이라는 글도 있다.

'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 인스타그램에 ‘페미니즘 독으로부터 자신들의 세대가 해방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이라는 글과 함께 히잡을 쓴 여성 수십 명이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인터넷 캡처
'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 인스타그램에 ‘페미니즘 독으로부터 자신들의 세대가 해방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이라는 글과 함께 히잡을 쓴 여성 수십 명이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인터넷 캡처

이 단체는 소개 글에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 몸은 알라의 것’이라며 자신의 몸에 대한 완전한 권위를 내세우는 페미니즘 개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단체의 SNS는 현재 팔로워가 2,000명 정도로 5만명 이상이어야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현지 기준에 따르면, 추종자가 소수에 불과하다.

전통 무슬림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온라인 캠페인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일축했다. 자카르타에 사는 회사원 리사(24)씨는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등을 지향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르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불편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파리아씨는 “(해당 캠페인이) 섬뜩하다”라면서 “단지 위험을 덜 느끼며 거리를 걷게 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했다. 또 “나도 무슬림이지만, 종교와 페미니즘을 연결시키기 전에 그들에게 먼저 페미니즘 공부부터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국립인도네시아대(UI) 성평등활동지원센터 책임자인 나데야 멜라티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상의 다양성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현상”이라면서도 “저런 반(反)여성운동이 여권 시장과 양성 평등이라는 대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그들이 정치적 무기로 종교를 핑계삼고 있지만, 많은 무슬림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반여성운동 인증 사진. 인터넷 캡처
'페미니스트 없는 인도네시아'라는 단체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반여성운동 인증 사진. 인터넷 캡처

한편 최근 인도네시아에선 성추행 피해자가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이크 누릴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성계와 종교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여성계는 성희롱과 학대에 취약한 수백만 여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성폭력방지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 이슬람교계는 이런 움직임을 동성애ㆍ양성애ㆍ성전환 등 성소수자 지지라고 공격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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