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발견, 시티투어버스] 수원화성 병풍도 혜경궁 홍씨 가마 “벤츠보다 비싸네”

입력
2019.04.05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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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정조의 효심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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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앞에 정차해 있는 수원시티투어버스.
화성행궁 앞에 정차해 있는 수원시티투어버스.

지난달 17일 오전 9시 20분. 수원역 수원시티투어 승강장에 ‘수원시티투어버스(제3코스, 수원·융건릉)’라고 쓰인 버스 한 대가 정차했다. 대기 중이던 관광객 21명이 발 빠르게 올라탔다. 버스는 정확히 9시 30분에 출발했다.

관광객 중 20명은 전북의 한 초등학교 동문 부부모임 맴버들이다. 한 명은 30대 여성이다.

수원 시티투어버스는 정조 임금의 원대한 꿈이 고스란히 담김 수원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든 융ㆍ건릉까지 한 번에 관람하는 7시간 30분 코스로 이뤄져 있다.

수원 시티투어3코스
수원 시티투어3코스

버스가 출발하자 정수경 해설사의 화성 행궁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졌다. 그는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있다면, 수원에는 화성 행궁을 중심으로 장안문(북문)과 팔달문(남문)이 있다”며 “왕이 지방으로 거동 할 때 머무는 곳이 행궁인데 화성 행궁의 경우에는 궁궐의 양식대로 지어진 국내 최대규모의 행궁”이라고 말했다.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전경. 수원문화재단 제공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전경. 수원문화재단 제공

 ◇숭례문보다 큰 장안문, 쌍둥이 팔달문 

10분 도 안 돼 도착한 곳은 수원화성의 서쪽 문에 해당하는 화서문이다. 내리지는 않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됐다.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정문이다. 통상 4대 문의 정문은 궁궐의 정면이자,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장안문은 북쪽에 있다. 화성 행궁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다 선왕이 있던 궁궐이 있는 서울이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안문은 숭례문과 같은 중층 구조지만 규모는 조금 더 크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를 옮기며 수원 화성으로 천도할 것까지 계산해 만들었던 것이다. 팔달문은 장안문과 쌍둥이 문으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경유지를 제외한 첫번째 코스인 화홍문 앞에서 관광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경유지를 제외한 첫번째 코스인 화홍문 앞에서 관광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성곽 중 가장 아름다운 화홍문(방화수류정) 

출발 후 15분 만에 도착한 곳은 화홍문이다. 수원 화성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등 두 개의 수문이 있다. 이중 북수문의 별칭이 화홍문이다. 화홍문의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해 지어진 이름이지만 현재는 물의 거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관광객 정종기(71)씨는 “물이 많았으면 장관이었을 텐데 아쉽다”며 “청계천처럼 물을 흐르게 하면 안 되느냐”고 해설사에게 묻기도 했다.

16각형으로 구성된 방화수류정에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16각형으로 구성된 방화수류정에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화홍문 바로 위쪽에 있다. 일반적인 8각형 모형이 아닌 16각형 정자다. 이 때문에 보는 위치에 따라 정자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수원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다.

행궁의 정문 격인 신풍루 앞에서 정수경 해설사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행궁의 정문 격인 신풍루 앞에서 정수경 해설사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행궁 

오전 10시 10분 버스는 다음 코스인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운행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행궁 앞은 광장으로 조성돼 있다.

정 해설사는 “화성행궁은 궁궐이 아님에도 궁궐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궁궐의 기본 구조양식인 3문 3조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행궁앞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 회원들이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행궁앞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 회원들이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 행궁에는 신풍루, 좌익문, 중양문 등 3개의 문이 있다. 또 외조(남군영, 북군영)와 치조(봉수당), 내조(장락당) 등 3조가 있다. 천도를 위해 정조가 계획했다고 한다.

봉수당은 모두 3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가운데 방에는 임금님의 의자가 놓였고 뒤쪽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이 서 있었다.

정수경 해설사가 봉수당 안쪽에 대해 설명하자 관광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정수경 해설사가 봉수당 안쪽에 대해 설명하자 관광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왼쪽 방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잔칫상을 앞에 두고 웃고 있는 모습이 재현돼 있다. 뒤쪽으로는 십장생 병풍이 놓였다. 잔칫상에는 모두 70여 가지의 음식이 마련됐다고 한다. 상위에 놓인 꽃은 종이로 만든 향화로 모두 42개가 꽂혀 있었다. 생화를 놓으면 음식 맛을 버리기 때문에 당시에도 조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봉수당 뒤쪽에 붙어 있는 팔폭병풍도. 서울에서 수원까지 8일간의 일정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봉수당 뒤쪽에 붙어 있는 팔폭병풍도. 서울에서 수원까지 8일간의 일정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히 봉수당 뒤쪽에는 서울에서부터 출발해 회갑연을 마칠 때까지 8일간의 여정이 담긴 그림(팔폭병풍도)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 관광객이 “와, 벤츠보다 비싸네”라고 해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행궁 관람 후 밖으로 나오면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의 전통무예 시범을 관람할 수 있다.

오조준 해야 과녁을 맞출 수 있다는 국궁. 국궁체험에 나선 관광객들이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오조준 해야 과녁을 맞출 수 있다는 국궁. 국궁체험에 나선 관광객들이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장병들의 훈련소, 동장대(연무대) 

이곳에서는 국궁체험이 이뤄졌다. 관광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일반인은 10발에 2,000원이다. 국궁은 양궁과 달리 정조준이 아니라 오조준 해야 한다고 진행자가 설명했는데도 이를 따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땅으로 고꾸라지거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10발 중 6발을 맞혔다는 관광객 송영식(71)씨는 “옛날에 통영 이순신공원에서 한번 쏴 본 경험이 있어 많이 맞힐 수 있었다”며 “그때는 한 발도 못 안 맞았는데 오늘 생일을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고 말하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낮 12시. 금강산도 식후경. 시티투어 버스는 관광객들을 지동시장 앞에 내려주고 90분 뒤에 오겠노라며 유유히 사라졌다.

오후 첫 코스인 융건릉 입장 전 정수경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오후 첫 코스인 융건릉 입장 전 정수경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두 임금이 잠든 곳, 융·건릉 

오후 1시40분,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오후 첫 코스로 향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들어 있는 융ㆍ건릉이다.

주차장에서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융릉까지의 거리는 10여 분. 진입로가 소나무 숲으로 이뤄져 있어 시원함과 솔 향기를 맡으며 갈 수 있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융릉까지 소나무 숲으로 이어져 있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융릉까지 소나무 숲으로 이어져 있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왕릉과 달리 융릉은 특이점이 있다. 다른 왕릉과 구조가 다른 것이다. 이는 정조의 효심이 만들어 낸 의도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왕릉은 진입공간에서부터 정자각(제를 지내던 곳), 능침공간까지 일직선으로 돼 있어 밑에서 보면 봉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융릉은 오른쪽으로 비켜나 있다. 실제 밑에서 보면 봉분이 살짝 보인다.

정 해설사는 “사도세자는 답답한 뒤주에 갇혀 돌아가셨다”며 “일직선으로 만들면 얼마나 답답해할까 싶어 정조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했다.

해설사의 말에 관광객들은 자신의 무릎과 손바닥을 치며 “와. 정말 대단하다”, “어머 어쩜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라며 감탄했다.

정조가 아버지를 생각해 기존의 틀을 깬 융릉 모습. 위쪽 오른쪽에 봉분이 보인다.
정조가 아버지를 생각해 기존의 틀을 깬 융릉 모습. 위쪽 오른쪽에 봉분이 보인다.

융릉에서 왼쪽으로 소나무 숲길을 따라 다시금 10분 정도 걸으면 정조가 잠든 건릉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나 건릉은 융릉과 달리 입구에서부터 봉분까지 일직선으로 놓여 봉분이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 하서운(66)씨는 “여행 하면 늘 멀리만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산책하기 좋고, 뜻 깊은 관광지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다음에는 손주들과 함께 다시 한번 와 봐야겠다”고 말했다.

정조가 잠든 건릉은 아버지의 융릉과 달리 기존 왕릉처럼 일직선으로 돼 봉분이 보이지 않는다.
정조가 잠든 건릉은 아버지의 융릉과 달리 기존 왕릉처럼 일직선으로 돼 봉분이 보이지 않는다.

 ◇승유억불 정책 속 임금님이 세운 사찰, 용주사 

융ㆍ건릉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마지막 코스 용주사에 도착했다. 용주사는 독특한 이력의 사찰이다.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조선 사회에서 임금이 세운 불교사찰이기 때문이다.

불교에도 효 사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조는 이후 불교에 심취했다. 경기 양주시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긴 후 극락왕생을 위해 사찰을 지을 결심을 했다.

정조가 불교의 효에 관심을 갖게 된 용주사 부모은중경탑의 내용을 관광객들이 읽어보고 있다.
정조가 불교의 효에 관심을 갖게 된 용주사 부모은중경탑의 내용을 관광객들이 읽어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배척대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절을 새로 지을 수 없었다. 증축이나 개축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신라시대 때 불에 타 터만 남은 갈양사를 재건하기로 했다. 그 사찰이 지금의 ‘용주사’다.

이곳 대웅보전에는 축구공이 그려진 탱화가 있어 유명하다. 이 탱화는 전 축구국가대표 박지성 선수 아버지가 기증한 것이다. 사찰 측의 동의를 얻어 넣었다고 한다. 다만 축구공을 찾는 것은 관광객들의 몫이다.

박지성 전 축구국가대표 선수 아버지가 기증한 용주사 대웅보전에 걸린 탱화. 오른쪽 위쪽에 축구공이 보인다.
박지성 전 축구국가대표 선수 아버지가 기증한 용주사 대웅보전에 걸린 탱화. 오른쪽 위쪽에 축구공이 보인다.

이날 단체가 아닌 홀로 관광에 나선 권지은(32)씨는 “수원에 한 번 와 봤는데 당시에는 뭘 봤는지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이번에는 해설사님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와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티투어는 처음이지만 계획하지 않아도 되고,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자주 이용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수원역 앞에 정차해 있는 수원시티투어버스
수원역 앞에 정차해 있는 수원시티투어버스

오후 4시. 용주사를 끝으로 시티투어 일정이 모두 끝났다. 버스는 다시 일행을 태우고 40여 분 만인 오후 4시 40분쯤 첫 출발지인 수원역 수원시티투어 승강장에 도착했다.

투어를 마친 김진숙(72)씨는 “평소 수원이라는 지역과 특히 융릉을 한번쯤 오고 싶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사도세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며 “좋은 여행을 하게 해 준 시티투어에 감사하다. 친구들과 함께 이렇게 여행도 하고 역사도 배우니 좋다”고 말했다.

수원 시티투어1코스
수원 시티투어1코스
수원 시티투어2코스
수원 시티투어2코스

수원시티투어는 3코스외에 화~금, 일요일에만 운행하는 1코스(수원·화성코스)와 매주 토요일에만 운행하는 제2코스(수원·광교)가 있다. 요금은 성인기준으로 각각 1만1,000원과 1만2,000원이다. 일요일에만 운행하는 제3코스는 1만4,900원이다.

수원시티투어 홈페이지에 접속,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이 가능하며 전화(031-256-8300)로도 가능하다. 최소 3명 이상 돼야 출발한다.

수원시티버스 통합 노선도
수원시티버스 통합 노선도

글ㆍ사진 =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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