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표적] 17조원 美사드 구입한 사우디, 이란 견제에 카슈끄지 사건 불끄기

입력
2019.04.04 17:00
수정
2019.04.04 22: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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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발사대에서 요격 미사일이 화염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자료사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발사대에서 요격 미사일이 화염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국제 무기 거래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빅 딜’이 이뤄졌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으로부터 150억 달러(16조8,000억원)에 달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사우디의 국방비는 약 694억 달러(2017년)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올해 3월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8년 전세계 무기 수입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입량은 전체 12%로 1위를 차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기 수입 절반 이상이 미국산일 정도로 안보 분야에서의 대미 의존도는 한미 군사동맹에 못지 않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사우디의 사드 구매 규모는 파격적이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지불한 무기 수입 비용은 34억 달러다. 사우디는 이번 사드 구매 건(150억 달러) 한방으로 4년치 무기 구입비용을 미국에 지불한 셈이다.

숙적 ‘이란’ 미사일을 막아라

사드는 우리에게 북한의 사거리 3,000km 이하 단ㆍ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고도 40~150km 상공에서 요격하는 무기체계로 이미 익숙하다. 지형이나 각국 사정에 따라 사거리 5,000km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다고 하나, 대체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용 미사일로 받아들여진다. 사우디 입장에서 150억 달러를 들여서라도 막아야 하는 탄도미사일 보유국은 결국 ‘숙적’ 이란을 비롯한 이라크, 예멘 등 시아파 그룹이다.

석유 부국 중의 으뜸이자 오랜 기간 수니파 맹주로 군림해온 사우디지만, 사우디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패권 경쟁은 물론 이라크, 예멘 등과의 국경 안보 문제,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 수위는 계속해서 높아져 왔다. 최근에는 같은 수니파 그룹의 카타르 마저 이란과 밀착하며, 집토끼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반면 이란은 무력 시위는 거세다. 특히 탄도미사일을 앞세워 사우디와 사우디의 뒷배 미국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올해 2월 테헤란 아자디 광장에서 열린 혁명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란은 군사력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국 내 지하에 구축한 미사일 제조시설과 함께 사거리 1,000㎞의 신형 탄도미사일 ‘데즈풀’을 공개했다.

이란에 실전 배치된 샤하브(Shahab)-3, 에마드(Emad), 가드르(Ghader), 세즈질(Sejjil), 코람샤흐르(Khoramshahr) 등의 사거리는 대체로 2,000㎞ 안팎으로 모두 사우디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다. 여기에 이란이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예멘 반군은 지난해 6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향해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우디 심장부 타격을 시도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의 미사일 위협에 맞서 1만6,000명의 방공군을 운영 중이다. 전체 22만4,500명(2017년 현재)의 7% 수준인데 미국에서 도입한 패트리어트 공중미사일 방어체계가 전력의 핵심이다. 현재 패트리어트 체제를 한 단계 더 진화한 PAC-3로 개량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번에 도입이 확정된 사드 체제와 결합해 이란 미사일에 대한 다층방어망을 구축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드 구매, 카슈끄지 살해 면죄부 카드

사우디의 사드 구매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 사건의 후폭풍을 낮추려는 행동이기도 하다. 사우디 왕정을 비판해온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살해된 뒤 사우디는 국제사회에서 왕따 신세로 전락했다. 사우디 정부의 고문 끝에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의혹 때문인데, 사우디 정부는 처음엔 이를 부인했으나 국제사회의 추궁이 커지자 “우발적 사고”라고 말을 바꿨다. 게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빈 살만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 배후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최대 안보협력국인 미국과의 관계 악화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일시에 야만 국가로 낙인 찍힌 사우디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150억달러 어치의 사드 구매로 접근했다.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돌파구가 되어 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20일 카슈끄지 사건 자체에 대해선 비판하면서도 사우디를 외교적 궁지로 몰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상원에 청문회에 출석,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해 사건과 연관됐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다”고 까지 말했다. 사우디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기를 구매해 갔으니, 카슈끄지 의혹은 이쯤에서 덮어주자는 뜻이었다. 무기구매를 대가로 카슈끄지 사건을 무마하는 일종의 ‘면죄부 거래’가 이뤄졌던 것이다.

최대 산유국 안보수요에 맞게 편제된 사우디 정규군

최대 안보위협이 이란이지만, 사우디의 안보 위협세력은 그 뿐만이 아니다. 사우디의 최대 자원인 동부 유전지대에 거주하는 시아파 주민들이 이란이나 이라크 등 이슬람 시아파 세력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시아파 세력이 사우디 왕정에 반기를 드는 것도 중대한 안보 위협요인이다. 그래서 사우디 군대체계에 지상군과는 별도로 10만명 규모로 방위군을 편성해 내부 치안유지 및 유전지대 보호 임무를 맡긴 것도 이런 이유다.

전통적으로 비동맹노선을 유지해온 사우디는 1984년 8만명 가량에 불과했던 정규군 규모를 걸프전 이후 이라크와 이란의 위협이 커지면서 22만4,500명으로 늘린 상태다. 앞서 언급된 방공군, 방위군과 함께 정규군은 지상군(7만5,000명), 해군(1만3,500명), 공군(2만명) 등으로 편제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군 장비 대부분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에서 조달됐다. 서방국가 군수업체인 영국의 BAE와 프랑스의 탈레스가 사우디에 현지 무기제조 시설을 운영 중인 것도 이런 과정의 산물이다.

지상군과 방위군이 병력수가 가장 많고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사우디 군의 핵심 전력은 공군이다. 한반도의 10배인 215만㎢ 면적의 광활한 사막 영토를 효과적으로 지키려면 지상군이나 해군 보다는 공군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방비의 절반 이상의 공군 전력에 강화에 투입되고, 공군 전력의 현대화 수준이 가장 높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타이푼과 미국의 F-15 전투기 등 첨단전투기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특히 F-15는 예멘반군에 대한 사우디의 주요 공격 무기인데, 이란이 유사시 사우디 원유의 수출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에도 이를 타개할 전력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사우디 공군은 향후 10년간 미국 보잉의 E-3A 초계기 5대로 운용 중인 공군조기경보통제기를 늘리는 한편 전술수송대를 현대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튀니지=AP 연합뉴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튀니지=AP 연합뉴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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