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그곳에선] “오징어 물회요? 오징어가 있어야 팔지”

입력
2019.04.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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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어획량 급감한 오징어

※동해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어업 기술은 발전했지만 어자원이 급격히 줄면서 동해를 대표하던 명태는 자취를 감췄고, 오징어마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매주 한 차례 동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 얘기를 통해 건강한 바다를 모색한다.

경북 포항의 한 오징어물회 전문 회식당 수족관에서 오징어가 헤엄치고 있다. 김정혜기자
경북 포항의 한 오징어물회 전문 회식당 수족관에서 오징어가 헤엄치고 있다. 김정혜기자

“오징어 물회요? 팔고 싶어도 없어 못 파니더”

지난달 26일 낮 12시 경북 포항의 한 회식당. “너무 비싸다”는 손님들의 볼멘소리에 주인장은 “그래도 오늘은 오징어가 있어 다행이다”며 맞받아쳤다. 메뉴판 오징어물회 가격은 ‘시세’다. 주인은 이날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받았다.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오징어물회를 파는 경북 포항의 한 회식당에서 가격을 정해두지 않고 시세대로 받고 있다. 김정혜기자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오징어물회를 파는 경북 포항의 한 회식당에서 가격을 정해두지 않고 시세대로 받고 있다. 김정혜기자

주인은 “올 초만 해도 1만3,000원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오징어 값이 너무 올라 1만5,000원을 받는다”며 “며칠 날이 좋아 이나마 먹을 수 있지 활오징어를 구하지 못해 장사를 못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회식당이 즐비한 포항에서도 오징어물회는 맛보기 힘들다. 오징어 물회를 파는 식당도 2, 3군데로 손꼽을 정도다. 오징어 어획량이 줄면서 오징어물회 전문 식당도 공치는 날이 빈발하고 있다. 단골손님들도 오징어물회를 맛보려면 식당에 미리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할 정도다.

쫄깃한 식감으로 인기가 많은 오징어물회. 최근 어획량이 급감해 물회의 성지로 불리는 경북 포항에서도 오징어물회를 맛보기 어렵다. 김정혜기자
쫄깃한 식감으로 인기가 많은 오징어물회. 최근 어획량이 급감해 물회의 성지로 불리는 경북 포항에서도 오징어물회를 맛보기 어렵다. 김정혜기자

◇중국어선 싹쓸이… 근절되지 않는 불법 공조조업

‘서민’ 어종 오징어가 귀하신 몸이 됐다. 어획량이 급감한 때문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 동해안의 오징어 어획량은 2009년 9만2,872톤에서 2013년 6만3,387톤, 2016년 4만4,203톤으로 반 토막 난 데 이어 지난해는 1만5,093톤으로 10년 전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강원 동해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강원 주문진 오징어축제는 산 오징어가 없어 방어와 광어로 ‘맨손 잡기 프로그램’을 대체해야 했다.

어민들은 동해 오징어가 씨가 마른 이유로 중국 어선의 남획을 꼽는다. 회유성인 오징어가 봄철 남해에서 산란한 뒤 동해를 따라 북한과 러시아 연안까지 올라간 뒤 6~11월 남하하는데, 중국 대형 쌍끌이 어선이 북한 해역에서 남하하는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울릉도 오징어’는 옛말이 되고 있다.

북한 수역에서 싹쓸이 조업을 하다 태풍으로 경북 울릉도에 피항한 중국어선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 수역에서 싹쓸이 조업을 하다 태풍으로 경북 울릉도에 피항한 중국어선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수산경영인협회에 따르면 동해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004년 144척이던 것이 2017년 1,700여척, 지난해는 2,100여척이나 된다. 원산 앞바다에서 150~200㎞ 떨어진 은덕어장에서 주로 조업한다. 3만4,000㎢나 되는 은덕어장은 오징어와 같은 회유성 어종의 길목이다. 예로부터 동해의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북한은 동력 어선이 500여척에 불과, 중국에 돈을 받고 내 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쌍끌이 어선의 어획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십 척씩 떼를 지어서는 한국 오징어어선에 부착된 집어등의 20배 이상 광력에 대형 그물로 싹쓸이한다. 줄에 매단 낚시로 하는 채낚기와 비교 불가다. 동해에서 한국과 일본의 오징어 어획량은 10년 새 크게 줄었지만 북한 수역에 출어한 중국은 같은 기간 오히려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은덕어장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중국 대형 쌍끌이 어선(왼쪽)과 한국의 오징어 채낚기 어선(오른쪽). 한국 어선은 한 줄에 약 80개의 전구가 달려 있는 반면에 중국 어선은 한 줄에 수십개씩 5, 6단으로 층층이 달려 있다. 한국수산경영인협회 제공.
북한 은덕어장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중국 대형 쌍끌이 어선(왼쪽)과 한국의 오징어 채낚기 어선(오른쪽). 한국 어선은 한 줄에 약 80개의 전구가 달려 있는 반면에 중국 어선은 한 줄에 수십개씩 5, 6단으로 층층이 달려 있다. 한국수산경영인협회 제공.

김성호 한국수산경영인협회 전 경북도회장은 “북한에서는 중국 어선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어선들이 물고기를 마구 잡고 있다”며 “오징어뿐만 아니라 동해의 어자원을 닥치는 대로 쓸어 간다”고 말했다.

한국 어선의 불법 공조 조업도 문제다. 어획강도가 낮지만 집어등을 달 수 있는 채낚기 어선과 어획강도는 강해도 집어등 사용이 금지된 트롤어선이 불법으로 오징어를 잡는 공조조업이 해경 단속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경북 동해에서만 3건 적발됐다.

김두한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은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를 되살리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자원 회복이 쉽지 않듯 바다에서는 어떤 어종이든 한 번 사라지면 다시 살리기가 무척 어렵다”며 “동해의 오징어가 멸종되지 않도록 급감한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불법 공조조업도 보다 철저히 단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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