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이제 됐다’할 때까지 4ㆍ3의 진실 채워나갈 것”

입력
2019.04.03 13:54
수정
2019.04.03 19: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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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평화공원에서 열린 71주년 제주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평화공원에서 열린 71주년 제주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많았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간다. 할머니가 바다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드신다. 할머니의 어머니, 아버지가 (4ㆍ3사건 당시 처형 당해) 바다로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았다. 할머니의 아픔을 몰랐다.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의 마음을 전해보려 한다. ‘나는 어멍 죽은거, 물에 떠댕기는거 그런 거만 생각하멍 살았주. 이제까지 억울한 마음만 들어나신디 우리 향신이가 들어주난 속이 풀어지는거 닮아.'(어머니 죽어서 바다에 떠다니는 것만 생각하면 살았지. 이제까지 억울한 마음만 있었는데, 우리 향신이가 들어줘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제주 4ㆍ3사건 당시 7살이었던 김연옥(78) 할머니는 부모와 가족들과 함께 서귀포시 정방폭포 옆 수형소에 끌려간 후 혼자 살아남았다. 김 할머니는 부모와 가족이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의해 처형 당한 후 정방폭포 앞 바다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평생 동안 가슴에 묻고 살았다.

김 할머니의 손녀 정향신(23)씨는 3일 오전 제주 제주시 봉개동 제주4ㆍ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1주년 제주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할머니의 사연을 울먹이며 풀어나갔다. 손녀의 울먹임에 추념식장에 앉아있던 김 할머니도 끝내 참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사연을 다 읽은 손녀가 곁으로 다가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날 4ㆍ3희생자 추념식은 ‘다시 기리는 4ㆍ3정신, 함께 그리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4ㆍ3생존 희생자와 유족, 도민, 여야 5당 지도부와 각계 인사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추념식은 4ㆍ3희생자들이 겪은 억압과 불법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ㆍ3생존 수형인 18인의 ‘공소기각’ 판결을 형상화한 퍼포먼스 ‘벽을 넘어서’로 시작됐다. 고령의 생존 수형인 일부도 이날 퍼포먼스에 직접 참가해 감동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어 도올 김용옥은 미래를 향해 71주년의 첫걸음을 내딛는 의미를 담은 '제주평화선언'을 낭독했고, 배우 유아인과 전국 각지에서 온 대표 6명은 4ㆍ3사건을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71년의 다짐’을 발표했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평화공원에서 열린 71주년 제주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분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평화공원에서 열린 71주년 제주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분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4ㆍ3추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해 4ㆍ3영령을 추모했다.

이 총리는 추념사를 통해 “제주도민들은 4ㆍ3의 상처와 미움을 용서와 화해로 꽃피웠다. 제주의 용서와 화해는 우리 사회에 감동과 교훈을 줬다”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진실의 은폐와 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직시와 기억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우쳐 줬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갈등을 치유하는 데도 제주는 좋은 거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제주도민들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4ㆍ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며 희생자 유해 발굴과 실종자 확인, 생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약속했다.

도는 추념식이 시작된 이날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도 전역에 1분간 추모묵념 사이렌을 울려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도민들과 함께 4ㆍ3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또 이번 추념식에서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4ㆍ3희생자로 결정한 130명의 위패가 4ㆍ3평화공원에 봉안됐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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