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다보탑과 석가탑의 미감을 생각하다

입력
2019.04.04 04:40
31면

불교 신도에게 최고의 절을 꼽으라면, 통도사나 해인사 또는 송광사 같은 삼보사찰이 거론된다. 삼보(三寶)란, 불교에서 최고로 꼽는 세 가지 보배인 불(佛, 붓다)ㆍ법(法, 가르침)ㆍ승(僧, 승단)을 가리킨다. 흥미롭게도 삼보는 종교의 3요소인 교조ㆍ교리ㆍ교단과 일치한다. 삼보사찰은 이들 삼보에 각기 대응되는 유형적인 사찰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일반인에게 하면, 단연 불국사가 1위로 나오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탑에 있어서 ‘석탑의 나라’로 불린다. 이는 중국이 벽돌탑인 ‘전탑(塼塔)의 나라’로, 또 일본이 ‘목탑의 나라’로 불리는 것과 대별되는 동양 삼국의 문화적 차이다. 우리 국토의 어디서나 발견되는 양질의 화강암은 석탑이 대세를 점하는 이유가 된다. 하얗고 단단한 화강암의 질료적 특징이 잘 발현된 석탑은 한국불교 건축문화의 백미임에 틀림없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석탑을 꼽자면, 단연 불국사의 다보탑이 아닐까? 다보탑의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엄숙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신품(神品)의 위용에 젖게 한다. 이 때문에 10원권 화폐의 도안에 다보탑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다보탑이 아닌, 석가탑에 얽혀 있지 않은가? 아사달을 그리워한 아사녀는 영지(影池)에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다가, 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투신하고 만다. 그래서 석가탑의 별칭이 그림자가 없다는 무영탑이 아니던가! 전설이란 최고의 극품(極品)에 서린다는 점을 상기하면, 왜 다보탑이 아닌 석가탑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해 볼 만하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을 형상화한 불교의 예술표현이다. 내용인즉슨, 석가모니가 ‘묘법연화경’을 설하자, 다보여래가 땅에서 솟아올라 이것이 최고의 가르침임을 찬탄하고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탑과 다보탑의 풀네임은 ‘석가여래 상주 설법탑’과 ‘다보여래 상주 증명탑’이다. 즉 석가모니의 설법과 다보여래의 증명 장면을 화강암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석가탑과 다보탑인 셈이다.

그런데 왜 두 탑은 완연히 다른 형상일까? 이는 석가모니가 수행자의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이라면, 다보여래는 열반 후에 화려한 종교적인 장엄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미술은 수수한 소박에서 시작하여 화려한 장엄으로 끝이 난다. 석가모니와 다보여래는 이 같은 두 극단에서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화강암이라는 단단한 질료로 화려하면서도 들뜨지 않는 미감을 완성하기 위해, 아사달은 재해석을 위한 깊은 사색의 심연에 잠겼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바로 다보탑이다. 그래서 다보탑은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모사해가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사달의 고민은 비단 다보탑에서 끝나지 않는다. 화려함보다 어려운, 단순한 선들을 통한 균형과 비례로 완성해야만 하는 석가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고, 아름다운 것을 화려하게 묘사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절제된 단순함 속에서 탈속적인 성스러움을 이끌어내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되는 정신적 고도의 균형이 바로 석가탑이다. 언뜻 보기에는 다보탑이 눈에 들지만, 더욱 높은 미적 승화는 석가탑에 있는 것이다.

다보탑이 화려한 드레스라면, 석가탑은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명품 정장이다. 이 때문에 석가탑은 한국불교 석탑의 표준이다. 콜라병 디자인의 단순하면서도 유려하고 매혹적인 선의 향연이 석가탑에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석가탑은 탈속적인 정신적 승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속의 핵심을 관통하는 콜라병과는 대척점에 있지만 말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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