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손에 버닝팜도… ‘중대 범죄’ 버닝썬이 웃기니?

입력
2019.04.03 04:40
수정
2019.04.04 16:3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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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즌2의 인터넷 생방송 중 출연자가 “장갑 안 끼면 버닝손”이란 네티즌의 댓글을 읽고 있다. 인터넷 캡처
[저작권 한국일보]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즌2의 인터넷 생방송 중 출연자가 “장갑 안 끼면 버닝손”이란 네티즌의 댓글을 읽고 있다. 인터넷 캡처

###1. 요리 방송을 준비하다 실시간 채팅창을 찬찬히 살피던 출연자가 “(요리 도중) 장갑 안 끼면 버닝손?”이라는 댓글을 읽더니 대뜸 웃음을 터뜨린다. 상황이 멋쩍은지 출연자가 뒤늦게 “나 이거 편집해줘”라며 손사레를 치지만 이미 늦었다. 이 영상엔 출연자의 경솔함을 꾸짖는 댓글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중대범죄조차 개그의 소재가 된 것이냐”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희화화하느냐”는 지적이 줄이었다. 1인 방송 형식을 본 따 인기를 끌었던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시즌2 인터넷 생방송 중 한 장면이다.

###2. 지난달 24일, 19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유명 유튜버 대도서관(본명 나동현)도 마찬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게임 방송을 진행하다 농장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소개하며 “이 농장 세무조사로 털어야겠다, 버닝 팜(farm)이다”라고 말한 게 문제가 됐다. “수사 중인 대형 사건을 이토록 가볍게 언급하고 웃어넘겨 버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네티즌 항의가 줄이었고 “풍자를 의도했다”던 대도서관은 결국 공식 사과했다.

최근 대중매체들이 ‘버닝썬 스캔들’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행태가 이어지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줄 잇고 있다. 버닝썬 스캔들 자체가 여성 대상 범죄, 마약 투약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자칫 2차 가해로까지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유튜버가 ‘내부자들’ ‘베테랑’ 등의 국내 영화의 주요 장면을 편집해 지난달 말쯤 공개한 ‘버닝썬 스캔들’ 가상 영화예고편 역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대형 사회적 참사는 어느 누구도 오락거리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데, 버닝썬 사건은 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도 되느냐는 항의다.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만우절을 기점으로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고 밝혔다. 윤씨는 이에 대해 강경대응 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윤지오씨 인스타그램 캡처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만우절을 기점으로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고 밝혔다. 윤씨는 이에 대해 강경대응 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윤지오씨 인스타그램 캡처

이 문제는 버닝썬 사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는 지난 1일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만우절인 오늘, 유튜브에 ‘오열하는 윤지오 아빠 직접 인터뷰’라는 제목의 허위 영상이 올라왔다”며 “강경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장자연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고 윤씨가 신변보호를 거듭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우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영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풍자’를 내세운 이 같은 이슈 소비 방식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풍자란 본디 강한 비판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며, 그 의도를 수용자들이 정확히 인지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최근 사례들을 보면 유명 사건의 표면적 사실들만을 가져와 ‘개그 소재’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도 “이런 종류의 패러디는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조롱이 될 때 특히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스스로를 잠재적 피해자라고 느끼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겐 그런 게 유머 코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공포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이 시점에서 이와 같은 패러디는 반드시 경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정 평론가는 “특정 사건을 모티프로 한 유머코드가 적당한 시기에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은 버닝썬 사건이 제대로 된 문제의식 속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져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무분별에 대한 패러디 문화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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