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축구와 정치

입력
2019.04.02 18:00
수정
2019.04.02 18: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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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6월 18일 영국 총선에서 이변이 일었다. 노동당이 10% 이상 앞서 있다는 여론조사와 달리 보수당이 압승했다. 정치권과 언론은 나흘 전 열린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서독과 잉글랜드의 대결에서 요인을 찾았다. 두 골 차이로 앞서던 영국은 후반 세 골을 연달아 내주며 독일에 역전패했다. 격분한 영국인들이 집권 노동당에 분풀이를 했다는 분석이었다.

□ 유럽ㆍ중남미인들은 축구를 통해 지역성이나 계급성, 정치의식을 표출하곤 한다. 사회갈등이 축구를 통해 심화하고, 축구가 대립을 부추길 때가 많다.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가 대표적이다. 항구 도시 리버풀은 무역으로 번창했다가 산업혁명을 거치며 경제 중심의 역할을 맨체스터에 빼앗겼다. 이후 두 도시는 반목하는 사이가 됐다. 두 도시의 견원 관계는 축구팀 리버풀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을 통해 드러나고 강화한다. 영국의 지역갈등은 축구 라이벌 관계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스페인에서는 축구가 곧 정치다. FC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지역의 독립성을 상징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FC바르셀로나는 스페인 국왕이 팀명을 직접 하사한 레알 마드리드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도 불사해 온 바스크 지역의 아틀레틱 빌바오는 아예 이 지역에서 육성한 선수로만 팀을 구성한다. 정치성이 짙다 보니 경계심도 강하다. 2017년 9월 1일 카탈루냐 지역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실시됐을 때 FC바르셀로나는 같은 날 저녁 라스팔마스와의 대결을 관중 없이 치렀다. 혹시 있을지 모를 소요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 축구와 정치가 만나면 위험천만이다. 시너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꼴이다. 정치라는 뇌관이 작동하면 축구는 언제든 크게 폭발할 수 있는 폭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등 축구 단체들이 경기장 내 정치색 배제에 온 힘을 기울이는 이유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탄생한 한국 프로축구는 그나마 사회 갈등이나 정치색과 거리가 멀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축구장 유세 논란이 다른 경기장으로 번지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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