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베이비리프트작전(4.4)

입력
2019.04.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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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막바지 전쟁고아 구출작전 '베이비리프트 오퍼레이션' 장면. 75년 4월 4일 수송기가추락해 어린이 등 150여 명이 숨졌다. AP 연합뉴스
베트남전 막바지 전쟁고아 구출작전 '베이비리프트 오퍼레이션' 장면. 75년 4월 4일 수송기가추락해 어린이 등 150여 명이 숨졌다. AP 연합뉴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기 전까지 ‘베트남 패망’이라 가르치고 배웠던 베트남 통일은 미국 입장에서는 패전이었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휴전이 성사된 뒤 미군은 수렁 같은 전쟁에서 점차 발을 빼기 시작했지만, 비정규군인 베트콩 게릴라가 건재하고 무기가 지천인 전장의 휴전이란 어불성설이었다. 미국으로서도 완전 철수는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포기하는 거였다. 사실 전쟁은 멈춘 적이 없었고, 미국과 남베트남은 75년 4월 30일 ‘패망- 통일’에 이르도록 쫓기며 등 뒤를 살피느라 숨돌릴 새가 없었다. 딱 한 달 전인 3월 30일, 남베트남 제2도시 다낭이 함락됐고,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은 사실상 포위됐다.

전쟁고아 등 어린이들만이라도 ‘구출’해야 한다는 홀트아동복지회와 펄벅재단 등 국제어린이 구호단체의 거센 요구에 포드 행정부가 마지못해 수긍했다. 4월 3일 ‘베이비리프트 작전(Operation Babylift)’이 시작됐다. 공군 수송기 C-5A 갤럭시와 C-141 스타리프터로 사이공의 탄손누트공항을 통해 아이들을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로 이송하는 작전. 포드 정부는 200만달러의 특별예산을 투입, 약 7만명의 고아를 구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탄손누트공항의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마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베트남 어린이의 친구들(FCVN)’ ‘모든 어린이의 친구들(FFAC)’ 등등 전시 아동 교육 및 구호단체 활동가들은 앞서 고아들을 공항으로 옮겨 둔 상태였다.

어린이 등 320여명을 태우고 미국 샌디에이고로 향하던 록히드사의 군수송기 C-5A 갤럭시(테일 넘버 68-0218)기가 4월 4일 오후 4시 공항을 이륙한 지 12분 만에 뒤쪽 화물 격납고 출입문이 오작동하는 고장을 일으켰고, 회항을 시도하던 끝에 4시45분 무렵 공항 인근 논에 추락했다. 다급한 상황 탓인지 사상자 숫자는 자료마다 다르지만, 그 사고로 140~150명이 숨졌고 약 80명이 어린이였다. 세계인이 지켜본 베트남 전쟁의 거의 마지막 비극이었다. 아무 상처 없이 살아남은 ‘멜로디(Melody)’라는 아이를 배우 율 브리너가 입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건 그렇게 3,300여명의 영ㆍ유아가 미국 유럽과 호주의 가정에 입양됐다. 그들 중에는 고아가 아니어서 가족과 생이별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저 작전은 오만한 인종주의와 문화적 우월의식이 버무려진, 비윤리적 정치 쇼라는 비판도 받는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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