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영토분쟁] <34> ‘클라크의 꼬리’를 사이에 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대립

입력
2019.03.29 17:00
수정
2019.03.29 18:43
20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간 해상경계선. 출처: 국제 국경선 연구소(International Boundaries Research Unit)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간 해상경계선. 출처: 국제 국경선 연구소(International Boundaries Research Unit)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 영토 중 가까스로 바다와 맞닿은 땅 ‘클라크(Klak) 반도’는 ‘반도 속의 반도’라고 불린다.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 속의 또 다른 반도 지형이기 때문이다. 클라크 반도는 발칸반도에서도 국가간 영토분쟁이 가장 심했던 곳인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스니아의 실효지배 상태에서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지만 클라크 반도 끝머리인 ‘클라크의 꼬리(Cape Rep Kleka)’라 불리는 0.04㎢ 넓이 구역은 이웃 크로아티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사이의 분쟁은 18세기 초 강대국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클라크반도는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에 해당하는 두브로브니크공화국의 땅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두브로브니크공화국을 차지한 뒤 아드리아해의 무역 패권을 둘러싸고 지중해의 또 다른 강국인 베네치아공화국과 대립했다. 대립이 길어지자, 오스만제국은 화해를 모색했고 클라크반도를 완충지대로 삼는 선물을 줬다. 1718년 양국은 파사로비츠 조약을 맺고 경계선을 긋는다. 조약에 따라 클라크의 꼬리를 차지하게 된 베네치아는 꼬리 앞에 놓인 폭 770m의 좁은 바닷길을 봉쇄해 네움-클라크만을 ‘닫힌 바다’로 만들어 버린 뒤 통행료를 독점했다. 대신 오스만제국의 이 지역 패권을 인정했다. 이후 두브로브니크공화국을 지배하는 세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바뀌었지만 과거 베네치아가 확보한 경계선은 계속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 경계는 무용지물이 된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지역이 모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연방)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유고연방은 클라크의 꼬리를 포함한 클라크반도 전체를 지리적으로 인접한 보스니아 네움 지방에 속하도록 재구획했다. 하지만 편의를 위해 해상 경계선을 설정해야 했던 유고연방 내의 두 지역은 클라크 반도와 크로아티아 펠예사츠 반도 사이에 등거리 원칙에 따른 중간선(median line)을 그어 비공식적으로 사용했다. 말리 스톤 해협에서부터 클라크-네움 만 초입으로 이어지는 해역에 경계를 규정한 것이다.

갈등은 1992년 유고연방 해체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별개 국가가 되면서 본격화됐다. 1999년 7월 양국은 유고연방 당시 사용하던 비공식 경계선을 공식 국경선으로 합의했고 클라크 반도는 보스니아의 영토가 됐다. 하지만 이후 크로아티아의 일부 세력은 과거 베네치아공화국 시절대로 클라크의 꼬리 지역은 크로아티아 영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999년 양국이 맺은 조약을 뒤집기에는 일부 크로아티아 세력의 주장은 근거가 허술하고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클라크의 꼬리가 크로아티아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공식 자료인 지도, 토지 대장, 등기부 등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정부도 국제사회의 눈치를 의식, 공식적으로 이 지역의 자국 영토임을 주장한 적도 없다.

반면, 보스니아 정부는 영토 수호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2009년 정부 발표를 통해 클라크 반도가 유고연방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스니아 영토임을 입증하는 공식기록과 자료를 공개했다. 보스니아 대통령이 국방부 소속 참모들과 클라크 반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 보스니아 국경 정찰대가 정기적으로 반도 주변을 정찰할 뿐만 아니라 인근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에게도 보스니아의 법령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홍윤지 인턴기자 김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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