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생중계 보이콧? 누구 맘대로

입력
2019.03.27 04:40
30면
23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23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26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KT와 NC 경기는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27일 예정된 경기 역시 방송 중계가 안된단다. KT-NC 주중 3연전을 중계하기로 했던 KBSN스포츠가 26~27일 야구 대신 배구를 중계하기로 했기 때문이란다. 방송사측에선 중계권 협약에 따라 정규시즌 경기 95% 이상만 중계하면 되는 것 아니냔 입장이지만, 프로야구는 개막 초반부터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프로야구는 개막 전 시범경기 중계도 거부 당했다. 방송사들은 제작비 절감, 적자 등의 이유를 댔지만 매년 해오던 시범경기 중계를 갑자기 보이콧 하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난달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로 방송사 컨소시엄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5년 중계권료 1,100억원)을 제시한 통신ㆍ포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방송사들의 잇단 중계 거부는 뜻밖의 일격을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거나, 새로운 TV 중계권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던진 으름장일 가능성이 높다.

시범경기를 기다려온 팬들을 위해 구단들은 부랴부랴 자체 중계라도 해보자고 나섰다. 카메라 서너 대로 찍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로 중계된 경기는 의외로 많은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화질은 선명치 않았지만 자기 구단 중심의 편파적 중계에 귀가 솔깃했다. 캐스터와 해설을 맡은 구단 직원들은 외국인 선발투수가 왜 수염을 기르게 됐는지, 박병호가 왜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는지 등의 내부 소식들을 전해주며 흥미를 돋웠다.

26, 27일 KT-키움 경기는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로 선정된 통신ㆍ포털 컨소시엄이 아예 제작과 중계를 모두 담당한다. 방송사 없이 진행되는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의 효시가 될 것이다. 방송사의 중계 보이콧이 되레 통신사와 포털 등이 방송까지 제작하는 길을 터준 셈이다.

프로축구도 자체 중계에 나섰다. 올 시즌부터 2부리그인 K리그2에 한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중계방송을 직접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방송국이 예전처럼 K리그를 홀대하고 중계를 거부하더라도 자체 제작 방송이 있기에 팬들이 경기를 보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란 게 프로연맹 입장이다.

최근 새로운 축구전용구장이 문을 열고, 지난해 러시아월드컵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대표팀 투혼에 힘입어 K리그에도 관중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방송 중계에서 K리그는 여전히 찬밥이다. 프로연맹이 방송사들로부터 받는 중계권료는 1년에 60억원이다. 방송사들로부터 연간 360억원을 받는 프로야구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일본, 중국과는 비할 수도 없고, 동남아 국가들보다도 적다는 게 연맹 주장이다.

일본의 J리그는 2016년 유럽의 대형 스트리밍업체 DAZN에 10년간 2,100억엔(약 2조1,600억원)에 중계권을 팔았다. 1년에 약 2,160억원이니 K리그의 36배에 달한다. DAZN 측에선 J리그가 당장 그만한 가치가 있어 산 게 아니라 함께 커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 설명한다. DAZN이 쏟아 부은 돈으로 중계의 질이 좋아지고, 해외 스타 선수들을 불러모아 더 많은 관중이 찾게 된다면 J리그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J리그에는 페르난도 토레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루카스 포돌스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이웃나라 중계권료를 지켜본 한국의 프로스포츠도 이젠 욕심을 내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나 K리그에선 중계권 재계약을 앞두고 방송사와 벌이는 물밑 기싸움이 볼만할 것이다. 뉴미디어의 빠른 성장으로 중계문화의 급격한 변화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중계권이 방송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로스포츠는 생중계가 생명이다. 팬들은 경고한다. 생중계를 볼 권리를 함부로 빼앗지 말라고.

이성원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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