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영감님이 누구야?

입력
2019.03.27 04:40
29면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에 얼마 전 이런 장면이 나왔다. 남자 주인공이 쓰러진 여자 주인공에게 “괜찮아, 영감님?”이라고 묻는다. 젊은 여성에게 ‘영감님’이라니, 얼핏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요즘은 ‘영감(令監)’이란 말을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나, 나이가 많은 중년 이상의 남자를 이를 때 주로 쓴다. 하지만 이것보다 먼저 사용되었던 의미가 있다. 조선 시대 ‘영감’은 종2품, 정3품의 벼슬아치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시대 이후에는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칭하는 말로 쓰였다. 여러 설명에 의하면 주로 군수, 국회의원, 판사나 검사를 ‘영감’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 여주인공의 직업 역시 검사이다. 판사나 검사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에서도 영감이란 호칭을 쓰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지금은 판·검사를 영감이라 부르는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장면들을 통해 이전의 언어문화나 특정 집단의 언어 습관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더 후대로 오면서 ‘영감’은 직업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나이 든 남성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영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국어사전에서 ‘영감’을 찾아보면 예전의 쓰임과 지금의 의미가 모두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의미 제시 순서나 특정 표시를 통해 여러 뜻 중에 어느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뜻이라 해도, 사전은 이러한 언어의 흐름과 변화를 담고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누가 영감이라는 거야?’ 싶을 때, 의외로 사전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이유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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