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진 칼럼] “왜 이리 어수선할까”

입력
2019.03.21 18:00
30면

각종 정책 갈등 속 계속되는 대립 국면

조정∙중재, 양보∙타협 포기 정치권 책임

집권 여당부터 평정심과 정치력 복원을

요즘 우리 사회가 어수선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떤 이슈를 콕 집어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고,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는, 탄식과 푸념이다. 정책 갈등이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대립 국면이 너무 오래간다는 의미다. 타협점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겠지만 끝도 없이 길어지는 게 문제라는 건데,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탄식이 향하는 책임의 소재는 분명하다. 국민에게서 이 어수선함의 원인을 찾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민들이 각자 입장에서 목청을 높이는 건 당연하다. 책임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갈등을 조정∙중재하고 법과 제도를 고쳐 진일보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는 쪽에 있다. 정치권이다. 하지만 되레 사회의 어수선함만 가중시키고 퇴행을 부추기는 꼴이라니….

사실 정치는 온갖 정책 갈등의 마지막 집합소다. 모든 논쟁적 이슈들이 몰리는 국회가 갑론을박 시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국회는 그뿐이다. 도무지 생산적 결과 도출에는 관심도 의지도 없다. 현 정부 출범 후 증상은 더 심해졌다. 밥 먹고 악수해 봐야 그때뿐, 지속 가능한 합의를 해본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다. 그러고도 세비를 받는 용기라니, 대단하다.

이 어수선함의 책임은 야당보다 집권 여당과 청와대에 있다. 촛불 시민은 그들에게 절대적 지지로 권력을 손에 쥐여주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한때 80% 이상 고공행진을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 사회는 이리어수선한가.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석 수와 여소야대 국회 지형 탓으로 돌린다면 그건 변명이다. 이것은 순전히 능력과 의지에 관한 문제다.

능력 유무는 정책 수립ㆍ추진 과정과 결과를 보면 드러난다. 소득 격차, 일자리, 최저임금, 근로시간, 비정규직, 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4대강 수중보, 부동산 대책, 사교육비, 시간강사, 공유경제 등 어느 것 하나 다각도의 검토와 치밀한 준비, 끈질긴 대화로 부작용과 후유증 없이 말끔하게 진전을 이뤄낸 게 없다. 벌여놓은 건 많고 성과보단 갈등만 깊으니 어수선할 수밖에….

더 심각한 건 정치적 해결 의지의 부재다.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려면 국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국회에는 살벌한 대치 전선만 있다. 거대 정당들은 서로 비수만 날린다. 청와대는 고비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개혁ㆍ민생 입법은 차고 넘치는데 절실함이 부족하다. 선거제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마음들은 벌써 콩밭에 가 있다.

우려되는 건 이 어수선함이 내년 총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마침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까지 겹쳤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 등을 겨냥하고 한국당은 청와대를 조준한다. 가깝게는 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파행과 청와대의 임명 강행이 예상된다. 모두 내년 총선 전략과 연계되다 보니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야 모두 대결을 피할 생각도 없다. 조정과 타협, 개혁 민생 입법 처리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하는 건 직무유기다. 열쇠는 집권 세력이 갖고 있다. 강 대 강 국면에선 힘센 자가 먼저 발을 빼 줘야 한다. 그래야 경색된 분위기를 풀고 대화할 수 있다. 법 절차에 따른 수사야 어쩔 수 없지만 망언이든 실언이든 말꼬리만 붙잡고 늘어지는 건 옹졸하다. 청와대도 더는 야당에 조롱과 야유를 보내선 안 된다. 상황이 어려울 때 평정심을 잃으면 패자가 된다.

국회 상황은 여야가 맡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공수처처럼 명분 있는 이슈라도 청와대가 직접 야당 압박에 나서면 여당은 뭐가 되나. 운신의 폭도 좁아지고 타협 가능성도 낮아진다. 청와대가 여당을 통제하고 여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면 야당은 여당을 제치고 청와대를 겨냥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어수선함이 해소되도록 모두의 정치력 발휘가 절실한 시점이다.

논설실장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