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북미관계, 뮬러 특검에게 물어라

입력
2019.03.20 18:10
수정
2019.03.20 18:26
30면
구독

북미 내부 정치, 하노이 이후 변수 부상

곧 공개될 뮬러 특검 보고서 최대 관건

트럼프, 탄핵국면 되면 무리수 둘 위험

북미 대화의 미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로버트 뮬러 특검에게 물어야 한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의 노딜 배경으로 지목된 것처럼 미국 정치가 외교에 간섭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미 관계의 변수가 된 적도 드물다.

뮬러는 2017년 5월부터 23개월째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 특별수사팀을 이끌고 있다. 그의 수사보고서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미 정치권은 한 달 넘게 긴장 상태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와 공모하고 이를 수사하려는 연방수사국(FBI)을 막은 사법방해 의혹 등을 받고 있다. 보고서에서 드러날 트럼프의 죄가 무거우면 야당인 민주당은 탄핵 카드를 쥐게 된다. 트럼프가 설령 탄핵되지 않는다 해도 탄핵절차가 진행되면 그의 재선은 어렵다. 뮬러가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면 트럼프의 행보는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사태는 민주당이 하원에서 탄핵절차에 들어가고, 트럼프가 탄핵을 피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을 때다. 국내 정치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외교적 성과물을 얻으려는 것은 역대 지도자들이 빠져든 유혹이다. 그런 탓에 미 외교가 망가지고 전략이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더구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목적 지향적인 트럼프는 정치적 성공을 위해선 물러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나리오를 북미 대화에 적용해보면 뮬러 보고서가 트럼프의 의혹을 해소시켜 주는 쪽이 긍정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예측불허의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뮬러 보고서는 러시아 스캔들의 종점이 아니라 또 다른 법적, 정치적 공방의 출발점이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2년 동안 뮬러 특검을 공개 비난한 게 1,100회가 넘는다는 뉴욕타임스 집계는 이 문제가 얼마나 트럼프에게 심각한지 보여준다.

하노이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보여주었듯이 트럼프에겐 이미 국내 정치가 최대 현안이고, 재선이 최상의 목표다. 미 대통령들은 집권 1기 때는 업적보다는 재선을, 재선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2기 때는 업적을 중시한다.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 정부도 처음에는 북한과 갈등하다 2기 때는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이례적으로 1기 초반에 대화에 나선 트럼프는 하원이 민주당에 넘어가고 2020년 대선까지 가시권에 들어오자 외교에서도 거칠어지고, 상대에게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국이 보기에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바꾼 트럼프는 협상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서로 합리적인 합의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 있던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한반도에는 순풍과 역풍이 충돌하고 있다. 북한은 대화 행보를 계속할지, 새로운 길을 모색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 국면에서 소외돼 있던 군부가 반발까지는 아니지만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부를 설득해 북미 대화를 유지할지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아직은 아쉬울 게 없는 것 같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트럼프의 말은 평양에 수 차례 특사를 보내던 이전 모습과 다르다. 적어도 백악관의 ‘어젠다 리스트’에서 맨 앞에 있던 북한 순위가 뒤로 밀려난 모습이다. 북한에 대해 비핵화 빅딜(일괄타결)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이고 보면 당장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천재일우의 기회,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 받던 비핵화 협상은 반전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다급해진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중재 레버리지를 찾고 있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북미를 돌려세울 카드는 보이지 않고, 아직은 양측 모두 우리 정부의 역할에 무게를 싣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적 맥락이 바뀌고 있고 이해관계가 걸린 다른 새 이슈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럴수록 서두르지 말고 작아 보이는 변수부터 차근차근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