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쏠림의 나라에서 교육하기

입력
2019.03.20 04:40
31면

최근 수년간 날씨가 좀 춥다싶으면 벌어지는 진풍경이 있다. 주로 검정색 롱패딩으로 캠퍼스가 가득해지는 것이다. 학교에 견학을 온 중고생도, 동아리나 학과에서 단체로 맞춰 입고 등교하는 대학생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검정색 롱패딩 차림이다. 심지어 해외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도 롱패딩을 입고 있어서, 멀리서 봐도 한국 학생인줄 안다고 하니 정말 못말릴 패딩 열풍이었다.

자동차 색깔도 마찬가지다. 흰색이나 회색, 검정색 같은 특정 색상에 대한 선호가 지배적이다. 조금만 특이한 색을 구하려 하면 판매사원부터 중고차 가격이 안좋다는 둥, 혹시 사고가 나서 수리하면 색상을 복원하기 어렵다는 둥 말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한국의 도로에는 화사하고 눈에 띄는 색상의 차량보다는 비슷한 무채색 계열 색상의 차량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취향의 통일성은 생각의 획일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초중등 교육에서는 여러 개의 선택지 중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형태의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정답 이외의 선택지를 기계적으로 고민 없이 배제하는 데 익숙해져 있고, 정답이 아닌 것은 내 점수를 갉아먹는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이런 문화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이 질문할 때마다 정답이 아닌 것을 얘기할까 봐 스스로 불안해하고, 틀린 답변을 하게 되면 이상한 아이, 부족한 아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경험칙이 생긴다. 이러한 경험칙은 결국 사회생활의 노하우로 자리 잡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정답만 얘기하는 로봇같은 인재가 탄생하는데, 이런 로봇같은 인재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리 정답을 학습한 로봇과 차별성이 거의 없는, 치명적으로 별 볼일 없는 인재가 되는 것이다. 정답을 미리 학습해 두었다가 질문이 들어오면 최단시간에 출력하는 일은 바로 로봇이 가장 잘하는 일 아닌가?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러한 획일성에서 탈출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너무 ‘튀는’ 아이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튀는’ 아이로 찍히면 이 획일적인 사회에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상처의 깊이가 정말 크기 때문이다.

문제와 정답을 암기하는 형식의 교육은 객관식 문제를 통해 평가를 쉽게 하려는 교육자의 편의 추구에 기인한 바가 크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주관식 평가를 많이 넣었다가는 평가의 객관성,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정부에서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잠시나마 학생들에게 단순 암기 시험의 비중을 확 줄여주고 있는 것은 그래서 참으로 바람직하다. 중학교 2학년만 되면 대학입시 모드로 바뀌는 일선 학교의 분위기에서 그만큼의 숨구멍이라도 열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다만 자유학기제를 활용하는 학교들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지적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려 하는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대학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은 1,2학년 때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혀 표준화된 대기업 입사문제를 준비하고, 학과 공부를 하면서 학점을 관리하고, 동아리나 외부활동을 통해 스펙을 쌓고, 그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일부는 해외 어학연수까지 다녀온다. 하지만 이 모든 ‘바쁨’이 과연 학생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됐다. 과연 이삼십 년 뒤의 사회상에 걸맞는 인재를 우리가 기르고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다. 쏠림의 문화에서, 다름이 곧 틀림이 되는 문화에서, 창의적 인재들이 당당히 숨쉴 수 있게 하는 일은 참으로 버겁다. 각자가 자신만의 스토리로 인생을 채워갈 수 있으면서, 공동체 윤리가 보장되는 최적점을 찾아가는 길이 필요하다. 어렵겠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되는 길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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