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재난 기억의 공간

입력
2019.03.1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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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 존 레넌, 맬컴 폴리 교수다. 이들은 1996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한 댈러스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다룬 논문을 내면서 이 개념을 제창했다. 이어 2000년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책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그들은 ‘다크 투어리즘’을 “현실에서 일어났고 그 뒤 상품화된 죽음과 재난 현장을 보여주고 소비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영국 한 대학의 다크 투어리즘 연구소에서는 좀 더 알기 쉽게 ‘죽음이나 재해 또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장소를 찾는 행위’로 정의한다.

□ 다크 투어리즘의 개념 자체는 새롭진 않다. 유럽 중세 성자들의 순교지나 매장지를 순례하는 행위도 이에 해당한다. 레논과 폴리 교수 이전에도 중세의 이 같은 관행을 ‘죽음의 투어리즘’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다. 관광지 중에서 부(負)의 유산을 포함한 경우를 ‘블랙 스폿 투어리즘’이라고 한 학자도 있고, 역사적 해석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는 장소를 ‘잔학 행위의 유산’으로 뭉뚱그린 이도 있다.

□ 전문가들은 다크 투어리즘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 흔적을 찾는 행위다. 대량 학살이나 식민지 강점 피해, 민주화 과정의 갈등을 보여주는 장소나 기념관, 추모비가 있는 곳도 해당된다. 또 천재(天災)든 인재(人災)든 대규모 재난을 기리는 장소도 포함된다. 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이자 현대 다크 투어리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타이태닉 침몰 희생자 1,500여명을 기리는 추모공원은 기착지 뉴욕에 조성돼 있다.

□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추모 공간이 18일 철거됐다. 서울시는 이곳에 20평 정도의 ‘기억ㆍ안전 전시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지난 정부의 재난 부실 대응에 대한 분노와 응어리를 상기하면 기리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이 재난의 가장 상징적 공간인 진도 팽목항 기림 작업에 전남도와 진도군이 소극적이라는 소식은 안타깝다. 팽목항 ‘세월호 기록관’을 결국 거부할 경우 비슷한 재난이 생길 때마다 기림에 부정적이었던 이들 지자체가 계속 도마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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