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페이스북의 미래와 단체 대화방

입력
2019.03.1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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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직접 페이스북에 작성해 공개한 페이스북의 미래 비전에 관한 글. 페이스북 캡쳐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직접 페이스북에 작성해 공개한 페이스북의 미래 비전에 관한 글. 페이스북 캡쳐

“인터넷의 미래는 개인적이고 암호화된 서비스로 점차 옮겨갈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접하고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직접 페이스북에 작성해 공개한 글을 통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왓츠앱과 같은 암호화한 메신저 서비스를 공통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자들이 소규모나 1대1로 비공개 대화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공개 플랫폼인 페이스북의 무게 중심을 비공개, 소규모 커뮤니티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이 15년 동안 디지털 공간에서 마을광장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이 소통하는 데 도움을 줬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거실과 같은 환경에서 사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사생활을 보호하고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좋은 방향성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예상하자 몇 가지 우려가 먼저 떠올랐다. 우린 이미 소규모 비공개 단체 대화방의 부작용을 강하게 경험하고 있어서다. 승리, 정준영이 속한 비공개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얘기들이 매일 새롭게 공개되며 상상 이상의 충격을 겪고 있다. 그들은 단체 대화방을 통해 대화하는 동안 대화 내용이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치 그들끼리 편안한 거실에 모인 듯 추하고 낯뜨거운 대화를 거리낌 없이 이어갔다. 개인 간의 대화와 자료의 공유를 원활히 해준 기술의 발달이 과연 긍정적인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지점이다.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이미 온라인 메신저 폭력은 존재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한국정보화진흥원(NIA)과 공동으로 실시한 2018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사이버 폭력 경험률이 32.8%에 달했고, 이는 2017년보다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사이버폭력 가해 행동 공간은 ‘채팅, 메신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온라인에서 원치 않는 음란물을 전송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이 꼽은 전달 도구도 ‘온라인 메신저’였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메신저 대화방은 암호화를 적용해 보안수준을 높이고, 과거 게시물은 유효 시간이 지나면 영구히 삭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승리, 정준영이 속한 단체 대화방의 악행이 4년이나 지났음에도 세상에 알려지는 지금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비공개 대화방이 아무리 편안한 거실처럼 느껴져도 공유하면 안 되는 대화와 이미지, 영상이 있다는 건 상식이다. 더 나아가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 ‘방관도 가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정준영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된 것은 그가 전에 없던 극악무도한 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회 곳곳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을 과시하는 수많은 ‘정준영’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사성은 이어 “불법촬영물은 오랜 시간 남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 속에서 일종의 놀이 문화로 소비되어 왔다”며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이 더 이상 '남성문화'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면 비동의 촬영과 유포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유포된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남성사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법과 제도의 재정비도 필요하다. 다른 성폭력 범죄에 비해 기소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을 받아온 불법촬영 범죄 기소율을 높이고, 불법촬영을 하면 무겁게 처벌된다는 인식이 정착되도록 보다 엄정한 법 집행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미래를 향한 걱정은 기술의 발전보다는 사람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 같다.

강희경 영상팀장 kstar@hankookilbo.com

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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