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대기로 북미협상…문재인 정부, 평양 특사로 풀어야

입력
2019.03.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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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 발표에도 북한 매체들이 주말 내내 침묵했다. 최 부상은 지난 15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과 핵ㆍ미사일 시험유예를 계속할지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북한의 속내가 협상을 깨는 게 아니라 대화 재개에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최 부상이 미국 측을 공격하면서도 “(북미) 최고지도자 사이의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진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당국자들도 최 부상 기자회견 후 “대화를 계속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하노이에서 빈손으로 돌아선 북미가 곧바로 다시 만나기엔 명분도 약하고 모양새도 어색하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단계적 접근을 원하지만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전 제재 해제는 없다며 일괄타결 빅딜을 고집하고 있다. 북한은 비합리적이고, 미국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국제사회 지적이다. 더구나 회담 결렬 뒤 양측은 초강경파를 내세워 서로를 자극하며 긴장만 높이는 형국이다. 자칫 평창동계올림픽 이전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선 결국 우리가 나서 양측의 자제를 주문하고 상호 간극을 줄여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금강산관광ㆍ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으로 실마리를 찾으려는 궁여지책은 미국의 냉소적 반응에 봉착했다. 북한도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라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기류다. 하지만 북미가 대결로 치달을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이기 때문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최근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각각 미국과 중국을 방문해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평양에 특사를 보내 양측의 본심을 전하고 오해를 풀면서, 작지만 실현 가능한 얘기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도 17일 “이번엔 남북간 대화의 차례로 보인다”며 적극적 역할에 나설 의향을 비쳤다.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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