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공연=서울 공식 깨진다

입력
2019.03.17 16:28
수정
2019.03.17 20:4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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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아트센터 인천에서 공연된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천지창조'. 1000L의 수조, 대형 크레인 등 무대 장치를 활용해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아트센터 인천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c) Claudia Hoehne
이달 초 아트센터 인천에서 공연된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천지창조'. 1000L의 수조, 대형 크레인 등 무대 장치를 활용해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아트센터 인천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c) Claudia Hoehne

16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달 20일 대구, 22, 23일 서울에 이어 26일 그는 인천에서 쇼팽의 선율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지메르만이 인천에서 연주할 아트센터 인천은 개관한 지는 약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금세 주요 공연장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공연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비결은 아름다운 외관과 빼어난 음향시설이다.

국내 클래식 공연은 서울 대형 콘서트홀 집중도가 높았다. 잠재 관객층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클래식 공연=서울’이라는 속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최신시설과 톡톡 튀는 기획력으로 무장한 서울 밖 공연장들이 ‘클래식 지방분권화’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아트센터 인천은 송도 자유경제구역(FEZ) 바닷가에 서 있다. 지휘자의 손을 본뜬 건물 외관, 바다를 형상화한 콘서트홀 내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립 비용은 2,600억원. 객석(1,727석)과 무대의 크기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에 비해 작지만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과 협주곡 편성에는 충분한 크기다. 독주회에나 실내악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콘서트홀이 클 경우 독주회는 음량의 만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데 아트센터 인천의 크기는 그런 면에서 유리하다”고 평했다.

인천 송도 자유경제구역 바닷가에 서 있는 아트센터 인천.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빈야드와 상자 모양의 슈박스 스타일을 혼합해 음향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인천경제청 제공
인천 송도 자유경제구역 바닷가에 서 있는 아트센터 인천.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빈야드와 상자 모양의 슈박스 스타일을 혼합해 음향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인천경제청 제공

지메르만의 독주회가 인천에서 열릴 수 있었던 이유도 좋은 음향 덕이다. 해외 연주자의 순회 공연장 선택은 기획사에 우선권이 있다. 클래식 기획사 마스트미디어는 “지난해 아트센터 인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의 바흐 무반주 독주회를 열었는데, 음향이 훌륭했기 때문에 지메르만의 공연도 인천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2003년부터 매년 기획하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지난해 개막작인 '돈 카를로'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연광철이 무대에 올랐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대구오페라하우스가 2003년부터 매년 기획하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지난해 개막작인 '돈 카를로'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연광철이 무대에 올랐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독일에서 궁정 가수 칭호를 받은 베이스 연광철이 지난해 해외 무대 스케줄을 취소하면서까지 선 국내 무대는 서울이 아닌 대구였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개막작 ‘돈 카를로’는 연광철이 서울 이외 지역 오페라 무대에 선 첫 작품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2003년 시작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대표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지원사업에서 5차례 최우수등급을 받았다.

국내 오페라극장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경기 성남아트센터, 대구오페라하우스 세 곳인데, 오페라만을 고집하는 건 대구오페라하우스뿐이다. 연간 12편의 오페라가 공연되고 객석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오랫동안 공단부지였던 곳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무모한 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개관과 동시에 축제를 운용하며 대구를 오페라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제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객석까지 소리를 잘 전달하면, 대한민국 극장 어디에 가도 소리를 잘 낼 수 있다”는 말이 성악가들 사이에 통용될 정도다.

지난해 6월부터는 오페라 저변확대를 위해 ‘문화로 회식하세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잘 알려진 영화에 삽입된 오페라 음악을 성악가들이 직접 불러주며, ‘오페라 코치’의 해설을 더한다. 매달 한 번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 예약이 이미 절반 정도 찼을 정도로 대구 지역 기업들의 호응이 좋다.

지역에 좋은 연주홀들이 늘어나면 티켓 가격이 낮아지는 선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세계적 연주자들의 국내 공연 티켓 가격이 비싼 이유는 4,5번 공연할 수 있는 일본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공연 한두 번에 그쳐서”라며 “해외 연주자들이 만족할 만한 훌륭한 홀에 관객 확보까지 가능하다면 여러 번의 무대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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