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건강하게 먹을까” 고민하다 사찰음식 재해석

입력
2019.03.1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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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음식점 ‘소식’ 안백린 쉐프 

지난해 12월 말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문을 연 사찰음식점 소식의 안백린 셰프가 15일 토종 농산물인 상추, 당근, 순무 등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문을 연 사찰음식점 소식의 안백린 셰프가 15일 토종 농산물인 상추, 당근, 순무 등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서울 남산 아래에 ‘작은 사찰’이 문을 열었다. 세계 음식점들이 줄지은 골목에 자리한 소식으로 사찰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문을 연 지 3개월 남짓이지만 채식 열풍과 맞물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화제다.

노란 석등이 켜진 입구로 들어서면 대여섯 개의 소반이 옹기종기 자리한다. 목탁소리를 연상시키는 테크노 음악이 흐른다. 촛대와 풍경, 장독, 거북이 상 등이 사찰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식을 주문할 땐 목탁을 두드린다.

소식은 절에서 스님들이 수행할 때 섭취하는 사찰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육류와 해산물은 쓰지 않고 콩이나 전분 등으로 만든 콩고기와 전분새우를 낸다. 인공 조미료나 식품 첨가물은 배제하지만 막걸리와 장단콩 등으로 만드는 특제 소스와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백미 대신 흑보리, 메밀, 청차조, 농미 등 7가지 곡물로 밥을 짓고, 각 지방에서 공수한 적겨자채, 당근잎, 경수채, 민들레잎, 깻순, 가지버섯 등 수십 종의 토종 나물을 쓴다. 이를 토대로 탄생한 요리는 기존 한식당이나 사찰 음식점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다. 예컨대 주요리 격인 발우(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그릇) 메뉴 중 ‘산속’은 호랑이콩과 작두콩, 줄콩 등을 끓인 뒤 볶아서 막걸리로 만든 버터밀크에 절인다. 무농약 새송이버섯은 잘게 찢어 말린 후 물에 불려 특제 소스에 버무린다. 타피오카 크리스피(식용 녹말칩)와 쌀눈, 현미 등을 넣어 지은 밥에 절인 콩과 버섯을 넣고 시금치 로즈마리 오일을 넣어 완성한다. 독특한 재료들이 새로운 맛을 내며 미각을 깨운다.

소식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사찰 음식인 새송이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 등으로 만든 ‘나물에 싸인 송이’ 꼬치(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와 콩고기로 만든 갈비를 곡물밥에 얹은 ‘고소한 매움’ 발우, 밀가루를 쓰지 않고 쑥과 초콜릿 가루로 만든 케이크인 ‘눈 내리는 나무’, 문어의 모양과 식감을 닮은 가지 튀김이 올라간 ‘문어와 노루는 자연에’ 발우. 소식 제공
소식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사찰 음식인 새송이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 등으로 만든 ‘나물에 싸인 송이’ 꼬치(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와 콩고기로 만든 갈비를 곡물밥에 얹은 ‘고소한 매움’ 발우, 밀가루를 쓰지 않고 쑥과 초콜릿 가루로 만든 케이크인 ‘눈 내리는 나무’, 문어의 모양과 식감을 닮은 가지 튀김이 올라간 ‘문어와 노루는 자연에’ 발우. 소식 제공

절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사찰 음식을 만드는 이는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한 안백린(26) 셰프다. 고등학교 때 영국으로 유학간 안 셰프는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영성 신학 건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순식물성요리전문학교를 나왔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유명 레스토랑에서 요리 경력을 쌓았다. 최근 소식에서 만난 안 셰프는 “유학시절 케이크, 햄버거 등 서양 음식을 많이 먹어 건강이 안 좋아져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먹을까’를 고민하다 음식과 정신건강 관계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셰프는 과도한 다이어트나 폭식을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로 본다. 그는 “현대인들이 마음이 불안하고, 불만족스럽고, 영적인 공허감이 들기 때문에 배를 채우려고 음식을 무분별하게 먹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음식과 음식을 섭취하는 인간 간의 관계가 재정립돼야 한다고 봤다. 안 셰프는 “기독교에서는 동물과 식물 등 모든 피조물의 상생을 강조한다”며 “상생을 기반으로 먹이사슬, 먹고 먹히는 관계가 성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생산량 증대를 위한 공장식 축산이나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식품 등에 반대한다.

그의 음식 철학은 불교 철학과도 연결돼 있다. 기독교 신자지만 육식을 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그는 “육식을 삼가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먹고, 음식을 만드는 일도 수행의 한 과정으로 여기는 사찰음식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불교 철학인 ‘3소(나물 소(蔬), 작을 소(小), 웃을 소(笑))’에서 땄다.

재료 밑작업에만 꼬박 3일 이상 걸리고, 토종 농산물을 구해 쓰니 재료 원가만 단가의 절반에 육박한다(일반 음식점의 경우 재료 원가는 단가의 15% 수준). 셰프 월급도 안 나오는 밑지는 장사다. 그는 “사료처럼 배만 채우는 음식 말고 자연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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