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54년 만에 가족 품에 돌아온 언니

입력
2019.03.17 14:07
수정
2019.03.17 20: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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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때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A(57)씨가 54년만에 가족과 상봉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제공
3세 때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A(57)씨가 54년만에 가족과 상봉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제공

세 살 터울 여동생은 경찰서 로비에서 자신과 닮은 여성을 발견하고 50여년 전 헤어졌던 혈육임을 직감하고 “언니”라고 외쳤다. 고개를 돌린 언니도 단번에 자신의 가족을 알아봤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A(57)씨 가족은 한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 살며 서로를 그리워하던 A씨 가족이 54년 만에 상봉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경찰 덕분이다. 세 살 되던 해 실종돼 해외로 입양됐던 A씨가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를 방문해 “헤어진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요청한 지 6개월 만이다. A씨는 헤어진 가족을 찾았다는 경찰 메일을 받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기뻐했다.

상봉이 기적처럼 느껴진 것은 친부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손을 놓치면서 잃어버린 A씨는 서울 은평구 영아원에서 지내다 1967년 다른 이름으로 미국에 입양됐다. 부모는 딸을 찾아달라며 수차례 경찰서를 찾았으나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던 딸을 찾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친모가 2014년 7월 서울 구로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며 유전자 샘플을 채취했지만 입양 당시 A씨 유전자 정보가 남아있지 않은 게 문제였다.

경찰은 2014년에 친모가 남긴 유전자와 지난해 채취한 A씨 유전자가 ‘흡사하나 친자관계라 확신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지만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A씨 친부의 유전자를 새로 채취하여 A씨 유전자와 다시 대조할 것을 의뢰했고, 1월 23일 국과수는 ‘유전자가 99.99% 일치해 친자관계에 해당한다’고 회신해왔다.

13일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사무실에서 만난 A씨 가족은 경찰관의 통역으로 대화를 나누며 회한을 씻어낼 수 있었다. A씨는 상봉을 가능케 한 경찰에 감사해하며 자신처럼 해외로 입양돼 한국의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자기 사연을 적극 알리겠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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