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미투 1년 후… “작가회의도 수평적으로 바뀌었죠”

입력
2019.03.18 04:40
수정
2019.03.18 10:16
26면
구독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에게 여성주의는 삶의 가장 큰 화두다. 1980년대 자신의 소설처럼 열렬한 환호와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최근의 영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응원하고 싶다. 인터넷을 뒤져 한 운동단체에 후원금을 보냈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에게 여성주의는 삶의 가장 큰 화두다. 1980년대 자신의 소설처럼 열렬한 환호와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는 최근의 영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응원하고 싶다. 인터넷을 뒤져 한 운동단체에 후원금을 보냈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조용히 잊혀지고 있다가 작년 한 해 갑자기 바빠져서 고생했죠.” 13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이경자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1년이 지나니 눈치코치가 생겼다. 이제 조직도 저도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했던 이 이사장은 지난해 작가회의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차례로 맡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이사장이 작가회의 직책을 맡은 건 지난 해 2월, 문학계 미투가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 이사장직은 2017년에 수락했지만, 취임 직전 상임고문을 맡았던 고은 시인 등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조직은 내홍을 겪었다. 이 이사장은 “사실 그 전에 한 차례 이사장직을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지난해 이사장직을 맡은 건 저라는 ‘여성의 상징’이 이 조직의 남성문화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고 말했다.

취임 후 이 이사장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성차별·성폭력 처리 및 예방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고 시인은 징계안이 논의되기 전 상임고문직을 사퇴하고 회원을 탈퇴했다. 이 이사장은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한창이지만, 수직적인 남성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작가들도 이 문화 속에서 작품을 썼다. 작가회의도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강했다. (취임 후) 명령하달 중심의 조직을 수평적으로 개편했다”고 말했다. 다만 고은 시인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 배우한 기자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 배우한 기자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문학계 페미니즘 열풍 중심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30년 전 그 자리에는 이경자의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고부갈등, 이혼, 외도와 매춘 등 가부장제의 적폐를 12개 연작소설로 엮은 이 작품집은 1988년 발표, 이듬해 동명의 TV드라마로 제작되며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사장은 소설 ‘사랑과 상처’, ‘그 매듭은 누가 풀까’, ‘계화’ 등에서 줄곧 가부장제 모순과 남성주의 문화를 비판하며 ‘여성주의 작가’란 수식어를 달았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1950~60년대 한국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각종 모순적인 문제들이 저한테 각인된 거죠. 제 어머니가 억압받은 딸, 아내, 며느리의 전형이었는데, 이 상처를 저한테 전이시키면서 당신 상처를 치유했어요. 이 특별한 성장과정이 제 저항적, 반골 기질과 맞물려서, (여성문제가) 훨씬 민감하게 보인 거죠.”

당시 이씨의 소설에 대한 반응은 열렬한 환호와 격렬한 비판으로 나뉘었다. 이 이사장은 “제 소설 앞에 붙은 ‘여성주의’, ‘페미니즘’은 경멸조의 수식어였다”고 말했다. “가부장제의 온갖 폐해만 모아 엮은 억지란 의미였죠. 어떤 반응도 아무 상관없어요. 내 문학적 가치는 작품 속에 있고, 그건 누가 평가한다고 해서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지난 해 조직을 다듬은 이 이사장은 올해 작가, 서점이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소설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의식주를 고민해야 하는 작가가 많고 작가회의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해결 방안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통해 작가들이 동네서점 문학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독자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다. 서울시와 ‘작가와 함께하는 in문학’ 프로그램을 신설, 작가들이 인문학 강연을 이어간다.

“한때 소설이란 형식의 글쓰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제가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인데 방탄 관련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방탄, 아미 소식 다 찾아봐요. 짧고 압축적인 방탄 노랫말, 팬들의 문장을 저는 쓸 수 없지만 볼 때마다 감탄하거든요. 이런 시대적 변화에서 (순문학) 작가들과 작가회의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