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매매계약 체결과 게임이론

입력
2019.03.18 04:40
31면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악당과 대립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대사가 있다. “총 내려놔! 안 그러면 여자를 죽일테다!” 악당은 여자를 감싸 안은 채 권총으로 위협하고 있고, 주인공 역시 손에 권총을 들고 악당 앞에 서 있다. 이때 영화의 주인공은 어떻게 할까? 예외 없이 권총을 내려 놓는다.

난 항상 이 장면을 볼 때 마다 저게 최선의 선택인가 의문이 들었다. 근데 게임이론(Game Theory)에 의하면, 주인공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란다. 주인공은 악당에게 가장 위협이 될 수 있는 힘과 무기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여자의 목숨까지도 위험에 빠뜨렸다.

게임이론은 이미 수천 년 전 이솝우화에도 나타난다. 이솝우화 “사자와 농부의 딸”에 나타난 게임이론을 살펴보자. 옛날 옛적에 수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사자는 길을 지나가던 아가씨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사자는 아가씨의 뒤를 몰래 따라가서 그 아가씨가 근처에 사는 농부의 딸임을 알아내고는 농부의 집 문을 두드렸다. 깜짝 놀란 농부에게 사자는 “따님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겁에 질린 농부는 딸과 잠시 상의한 후 말했다. “사실 우리 딸도 사자님의 늠름한 모습에 마음이 끌리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자님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이 되어 선뜻 결정을 못하겠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자는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뽑아내었다. 농부는 결혼을 허락하기는커녕 발톱과 이빨이 빠진 사자를 몽둥이로 패서 쫓아버렸다.

어리석은 사자는 자신의 요구에 대한 농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농부는 딸의 결혼을 원하지 않지만, 칼자루를 쥔 사자의 비위를 건드려 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자는 자신이 가진 칼자루가 ‘이빨과 발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칼자루를 스스로 없애버렸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칼자루를 뺏긴 착한 선생님 이야기다. 교육계에 봉직하신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 법률문제를 상담하러 왔다.

살고 있던 집(A집)을 팔고 새 집(B집)으로 이사 가려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A집을 사려는 매수인은 전혀 자력이 없이 은행 융자로 집을 산 다음 다른 사람에게 전세를 놓으려는 사람이었다. 잔금 날짜에 잔금을 치를 형편이 되지 못하자 매수인은 선생님에게 사정을 했다. 먼저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 주면, 은행융자를 받아 우선적으로 잔금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고민에 빠진 선생님은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몰취하려 했지만, 그럴 경우 B집으로 이사를 가는 계획에 차질을 빚는데다가 자신도 위약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고 또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며 너무 간절히 사정을 하는 바람에 먼저 등기를 넘겨주기로 하는 변경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잔금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등기를 넘겨주는 것이 찝찝해서, 먼저 등기를 넘겨 줄 수는 없다는 통보를 하였다. 그러자 매수인측에서 이번에는 선생님 측의 변경계약위반을 들어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라는 요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 선생님은 자신이 계약금을 몰취할 칼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그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사자와 농부의 딸”라는 이솝우화를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건네준 것이다.

웬만큼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니 칼자루를 쥔 당신에게 상대방이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해 온다면, 단호하게 말하라. “저는 바보가 아니니, 그런 억지 부리지 마세요.”

윤경 법무법인 더리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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