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계규 화백의 이 사람] 정준영, 개인 일탈 넘어 구조적 비리가 키운 ‘괴물’

입력
2019.03.16 04:40
수정
2019.03.16 07:4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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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은 2016년 9월 전 동의 없이 여자친구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긴 했지만, 억울해했다. “여성분이 의도치 않게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영상은 즉시 삭제했고, 여성분이 무혐의 처분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수 차례 제출했다.” 정준영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고작 3개월 뒤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을 통해 방송에 복귀했다.

3년 만에 정준영은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불법 촬영 동영상을 상습 유포한 혐의로 14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소환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또 한 번 사과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 13일에도 입장문을 내 “흉측한 진실을 맞이하게 되신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분들께 무릎 꿇어 사죄한다”고 했다. 그의 사과는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더러운 진실이 너무 늦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정준영은 대중을 기만했다. 그는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년 간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 3년 전 수사 과정에서 핵심 증거인 휴대폰을 은폐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면죄부를 받은 그가 웃는 얼굴로 TV에 나오는 것을 본 3년 전의 그 피해자, 그리고 수많은 불법 촬영 피해자들의 마음은 참담했을 것이다.

정준영 사건의 본질은 특정 연예인의 일탈이 아니다. 수사 기관의 방조와 묵인, 매스미디어의 도덕적 불감증, 그리고 불법 촬영 동영상을 즐긴 사람들이 괴물을 키웠다. 과연, 정준영으로 끝이겠는가.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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