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보기] 느리지만 변화는 있다

입력
2019.03.16 04:40
26면

전임 정부에 심각한 죄과가 있었다면, 다음 정부는 그 죄과를 시정해야 한다. 그것이 새 정부의 의무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될 것이므로. 그런데 현재 문화 현장에는 집권 2년이 다 돼가도록 현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란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특정 예술가들에게 불이익을 주도록 작성한 명단을 말한다. 명단을 받은 문화예술기관과 위원회들은 그 예술가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 그런데 지시를 내린 전직 대통령과 문체부 장관 등은 구속됐으나 지시를 받고 실제 불법을 실행한 사람들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를 비판하는 문화 현장의 여론에는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분노에 앞서 따져봐야 할 사실이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드러낸 문제는 단지 몇 사람들의 도덕적 부패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력의 통제와 간섭을 가능케 하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뛰어난 예술작품이라 해도 상업성을 갖추지 못하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시장이 대단히 작은 탓에 예술가들이 국가 지원에 의존하게 됐다. 다른 하나는 예술기관의 구성과 운영이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부에 의해 직간접 임명된 기관장과 위원들은 명백히 부당한 지시를 받더라도 거부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정치권력이 예술을 통제할 가능성은 계속 남는다. 처벌만으로 블랙리스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어차피 핵심 책임자들은 이미 유죄를 선고받고 죗값을 치르고 있다. 남은 가담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문화 현장의 대응이 엄벌주의적 요구에만 쏠리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2년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면 제약이 있으니 최근의 문화예술정책 가운데 한 가지만 예로 들면, 화랑이나 전시공간이 전속작가를 고용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나왔다. 즉, 정부가 미술작가나 예술단체를 직접 지원하는 대신 미술작가들이 화랑과 계약을 맺어 그 안에서 활동하고 소득을 얻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규모가 작아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지만 향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시작이라고 본다.

애초 미술작가들이 사실상 자영업자로서 소속도 지위도 없이 누구의 주문도 받지 않고 작업만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조선의 화가들은 도화서에 고용된 공무원이었으며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국가가 미술작가들을 고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또는 미술작가가 회사원 비슷한 형태로 근무하거나 지역사회 코디네이터나 커뮤니케이터로서 일정 급여를 받고 근무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렇게 예술가들이 국가 지원에서 멀어지면 블랙리스트에 의한 배제는 불가능해진다.

물론 완벽한 정책은 없다. 기획사로부터 불공정 계약을 강요당하는 연예인처럼, 나중에는 전시공간과 미술작가의 관계에 불평등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가 관료들에게 휘둘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평가는 온당치 않다. 적어도 지난 정부에서 배제됐던 예술가들에게 예산을 몰아줌으로써 손쉽게 지지를 확보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진 않았다. 만일 그리 했다면 블랙리스트가 작동하는 시스템도 그대로일 테니, 이것은 결코 나쁜 조짐이 아니다.

개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기관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제점은 기관장을 민간 추천이나 투표로 임명하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선이나 문체부 장관 후보 소식에 댓글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기에 아직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문화 현장의 역할은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예술 역량을 만드는 것 아닐까.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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