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 미얀마 반군이 밀수 주도 의혹… 로힝야족을 ‘운반책’ 이용

입력
2019.03.15 19:00
수정
2019.03.15 19:18
20면

| 방글라데시 '마약과의 전쟁'

미얀마 라카인족 반군

2015년 게릴라전 확대하며

활동자금 마련하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마약 밀매

방글라데시, 국경 나프강에

마약 탐지기 등 설치 추진

5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의 발루칼리 난민캠프에서 한 로힝야 난민이 임시주택의 지붕을 고치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일부 로힝야 난민은 고단한 삶에 지친 끝에 미얀마 동북부 샨주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일종인 ‘야바’의 운반책 노릇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콕스 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5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의 발루칼리 난민캠프에서 한 로힝야 난민이 임시주택의 지붕을 고치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일부 로힝야 난민은 고단한 삶에 지친 끝에 미얀마 동북부 샨주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일종인 ‘야바’의 운반책 노릇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콕스 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일 아사루카만 칸 카말 방글라데시 내무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와 방글라데시 국경을 가르는 나프강을 따라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마약 탐지기와 스캐너 등 마약 단속에 필요한 현대식 장비도 구비하겠다”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가 국경 하천에 마약 탐지기까지 거론하게 된 건 지난 4~5년간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쏟아져 들어온 마약, 이른바 야바(Yabaㆍ진홍빛 알약 형태의 메탐페타민으로, 신경자극제와 카페인을 합성한 각성제류 마약) 때문이다.

2015년 이후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의 야바 유입은 심상찮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단속을 강화한 방글라데시는 급기야 지난해 5월 4일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로 유입되는 야바의 원산지는 미얀마 동북부 샨주(州)다. 특히 미얀마와 태국, 라오스 등 3개국 국경이 만나는 지점인 ‘골든 트라이앵글’은 오랜 세월에 걸쳐 아편, 헤로인, 야바, 그리고 ‘아이스’라 불리는 크리스탈 메쓰(투명한 덩어리 모양) 등으로 진화한 거의 모든 형태의 마약이 생산되고 밀수되는 마약 허브로 자리잡았다. 미얀마에서 3개국 꼭짓점을 통과한 야바와 아이스는 태국으로, 라오스로, 그리고 다시 국경을 넘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로, 최근 들어선 한국과 일본까지 널리 퍼져나간다. 미얀마 ‘내전 경제(Civil war economy)’의 주축이었던 마약 산업은 이제 동남아를 넘어서 글로벌화하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샨주는 다양한 무장반군과 정부군은 물론, 친정부 민병대의 활동까지 난무하는 곳이다. 중앙정치가 좀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법망과 통제가 허술한 구역이 많다. 마약 공장 가동에 적합한 정치 환경이다. 하지만 마약 공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정치적으로 너무 불안한 것도 좋지 않다. 즉, 내전 격전지는 부적합하다는 의미다. 샨주 곳곳에서 교전이 지속되지만, 마약 생산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와주군(United Wa State ArmyㆍUWSA)이 통치하는 ‘와(Wa)특별자치구역 2’나 민족민주동맹군(NDAA)의 ‘특별자치구역4’ 등은 모두 미얀마 정부와 휴전을 맺은 상태로 군벌왕국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들 자치구역 밖에도 야바공장 가동 의혹은 있으며, 특히 친정부군 민병대들도 마약생산에 연루돼 있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게다가 샨주는 최근 증가 추세인 합성마약 재료들의 원산지 중국과 이웃해 있다. 야바를 비롯한 마약의 생산 급증은 이 모든 환경에 기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경찰 신속대응부대(RAB)가 마약거래상의 아지트를 급습한 뒤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작년 5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으나, 마약범 단속 과정에서 100명 이상을 사살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다카=AP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경찰 신속대응부대(RAB)가 마약거래상의 아지트를 급습한 뒤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작년 5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으나, 마약범 단속 과정에서 100명 이상을 사살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다카=AP 연합뉴스

그렇게 만들어진 미얀마 동북부산(産) 야바는 미얀마 서부 국경을 거쳐 방글라데시로도 흘러 들어간다. 미얀마의 상업수도 양곤을 거쳐 라카인주 시트웨, 라카인주 북부 마웅도 타운십을 지나 방글라데시로 국경을 건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표한 ‘동아시아 합성마약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샨주를 제외하고 미얀마에서 2018년 단속 결과 메탐페타민 압수 물량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라카인주다. 전체 압수량 1억 670만개의 30.8%가 이 곳에서 압수됐다(샨주 압수 비율은 54.8%, 기타 지역은 14.4%). 단속에 걸리지 않고 무난히 국경을 넘어간 분량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 마약 밀수 루트는 다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내전 국면과 로힝야족 대학살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이벤트와 깊이 관련돼 있다.

방글라데시에 야바 유입이 늘어나기 시작한 2015년은 라카인주 주류인 라카인족 반군 ‘아라칸군’(Arakan ArmyㆍAA)이 서부전선에서 대(對)정부 게릴라전을 본격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AA는 2009년 북부 카친주 카친독립군(KIA) 영토에서 결성됐다. 이후 카친주, 샨주 등에서 KIA는 물론, UWSA와 NDAA 등 다른 무장단체들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다음달 10일 열돌을 맞는 AA는 뛰어난 전투력은 물론, 무기나 각종 장비 구입에 있어서도 상당한 자금력을 과시하고 있다. 라카인족 디아스포라들의 기부금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의 내전 자금은 다른 출처가 있음을 암시한다. AA의 마약 거래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6년 2월 6일 양곤 시내 탐웨 타운십에서는 AA 간부인 아웅 먓 초 중령이 마약 소지 및 거래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그는 당시 우 와이 타 툰이라는 이름의 마약상과 함께 붙잡혔다. 체포 당시 두 사람은 야바 30만개를 갖고 있었다. 물론 AA는 마약 거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 왔다. 따지고 보면 미얀마 무장반군들이 마약거래를 부인하는 건 그들의 ‘전통’이 돼 버렸다. 유엔 관계자는 기자에게 “심지어 와주(특별자치구역 2)에도 마약퇴치 포스터가 붙어 있다”는 말로 이들의 이중 플레이를 암시했다.

지난해 6월 미얀마의 한 경찰 공무원이 마약단속 과정에서 압수한 마약류를 한 곳에 쌓아놓고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미얀마의 한 경찰 공무원이 마약단속 과정에서 압수한 마약류를 한 곳에 쌓아놓고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동안 복수의 옵저버와 전문가는 AA의 마약 거래에 강한 의혹을 제기해 왔다. 예컨대, 2017년 고(故)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의장을 맡았던 ‘라카인주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 45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본 위원회가 라카인주를 방문했을 당시, 이 곳의 모든 커뮤니티는 자신들이 마약 및 마약 문제에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라카인주에서도 마약 밀매는 아라칸군과 아라칸로힝야구원군 같은 무장 반군의 활동자금을 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정부 관료들까지 마약 거래에 연루되는 사실은 이 국경 지역이 얼마나 법치 부재 상태인지 보여준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동남아시아-태평양 사무소장인 마이클 더글러스는 지난 11일 보고서 발표 회견에서 AA 마약 거래 연루설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AA가 마약 거래에 관여한다는 구체적 정보(물증)는 없지만, 아마도 관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글라데시로 마약이 흘러 들어가는 건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마약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실과 관련돼 있다. AA는 뿌리 자체도 그곳(카친주)에 있다. 함께 훈련받은 지역 동료 등과의 ‘연계망’이 중요한 암시”라고도 했다. 그는 기자회견 후 “(모든 정황상) 아라칸군이 마약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로힝야족 연루설에 대해서는 “로힝야는 마약 거래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개별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2017년 8월 미얀마의 로힝야족 대학살이 가속화하면서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 콕스 바자르 지역에 형성된 로힝야 난민 캠프는 이 지역 마약 거래 급증을 설명해 주는 또 다른 중요 요소다. 현지 매체 다카트리뷴은 “2017년 이후 방글라데시에 들어온 ‘로힝야 야바 밀수단’ 관여 인물은 500~1,000명으로, 이들은 야바 운반책 노릇을 한다”는 방글라데시 정보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2017년 10월 마을에 들이닥친 정부군과 라카인족 자경단의 폭력에 방글라데시로 피했던 유수프(가명)는 기자와의 메신저 교신에서 “AA가 미얀마 내에서 로힝야를 야바 운반책으로 이용해 온 건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운반책 역할은 2017년 이래 난민 대이동과 함께 더욱 급증하며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난민캠프 내 일부 로힝야도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로힝야 캠프에 거주하는 안와르(가명)에 따르면, 야바 한 알의 가격은 고작 30~50다카(400~670원) 정도다. 안와르는 야바 중독이 가정 파괴로 이어진 사례 하나도 전했다. “2년 전 마약 복용을 시작한 20대 중반 로힝야 남성은 1년 전부터 아예 자신의 집에서 야바를 팔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 그의 아내는 손님 한 명과 눈이 맞아 떠나버렸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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