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품위있는 마지막을 위해… 공교육서 죽음 논의해야”

입력
2019.03.14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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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고려대 죽음교육연구센터 센터장 

임병식 고려대 죽음교육센터 센터장은 “대량해고 이후 20여명이 사망한 쌍용차 사건, 세월호참사 등 최근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외상적 죽음에 총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임병식 고려대 죽음교육센터 센터장은 “대량해고 이후 20여명이 사망한 쌍용차 사건, 세월호참사 등 최근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외상적 죽음에 총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2월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 의료 행위를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뜻에 따라 중단할 수 있게 한 이 제도의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사람은 약 3만5,000여명.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 죽음 자체를 논하기 꺼리는 국민 정서는 여전하다. 공동묘지나 화장터를 만든다고 하면 지역사회에서 격렬하게 반대하고, 국내 사망자 74%가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존엄사법이 시행된 지난해 초,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내에 죽음교육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국내 생소한 ‘죽음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지난해 8월 초중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한국교원연수원 온라인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한 데에 이어, 이달 22일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제1기 죽음학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최근 고려대에서 만난 임병식(58) 죽음교육연구센터장은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이지만, 이런 문화적 외상을 체계적으로 치료할 전문가도 교육기관도 없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의 전직은 의사다. 십수년간 미국 뉴욕에서 의학 박사를 받고 임종전문가(thanatologist)로 활동하며 수많은 임종 환자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는 “죽어가는 환자의 마지막 눈빛, 고맙다는 인사말이 나를 붙들어 맨 것 같다. 인간이 인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만큼 완벽한 의료 미학의 지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질병을 약이나 수술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죽음은 의학의 실패를 뜻하죠. 하지만 동양에서는 의학이든 철학이든 환자가 어떤 심적 상태에서 질병과 관계 맺느냐에 따라 치유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임 센터장은 2001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지난해 ‘중국 유학의 생사관 연구’로 18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을 쓴 10년간 임 센터장은 부산 한가족요양병원 임종실 실장으로도 재직했다. 250병상의 요양병원에서 일주일에 4,5명꼴로 임종을 맞았다. 그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이승의 끝자락에 사랑하는 사람과 인사할 수 있는 게 살아가는 목적”이란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다.

‘임종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그는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할 때도 있지만, 대략 생리학적 수치, 호흡, 수면 상태 등으로 임종기를 판단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임종기 환자는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수면상태를 유지합니다. 죽음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도파민 수치가 급속하게 증가하죠. 말기암 환자에게 모르핀 투여가 필요 없을 만큼 많은 양이 분비됩니다. 이 도파민의 영향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보는 등 일종의 임사 체험도 일어나죠. 마지막에 반짝 의식이 돌아옵니다. 임종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략 닷새 내외에요.”

임병식 고려대 죽음교육연구센터장. 배우한 기자
임병식 고려대 죽음교육연구센터장. 배우한 기자

죽음도 삶처럼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다. 임 센터장은 “죽음교육의 핵심은 다른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과 문화인류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다종다양한 학문에서의 죽음 연구를 총괄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교육법도 개발한다. “죽음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대부분 가족에게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소원했던 마음을 풀고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해요. 죽음의 문턱에서야 가장 소중한 게 보인다는 뜻이죠.”

국내에서 죽음교육은 주로 노인복지 현장에서 죽음 ‘준비’교육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임 센터장은 생애주기별로 죽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죽음교육이 학교에 도입됐다. “죽음교육은 유치원 시기에도 필요합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을 수도 있고 차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의 이혼도 아이에게는 죽음과 맞먹는 상실의 경험입니다. 작년 8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입니다. 구체적인 학생 지도방법도 제공하고 있어요.”

22일 개원하는 ‘죽음학 아카데미’는 일반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 프로그램이다. 경찰관, 호스피스, 119구조대원, 간호사 등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이들의 트라우마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호스피스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죽음 관련 정책은 교육보다 제도가 먼저 시행됐습니다. 사전연명신청도 개개인의 충분한 자각 없이, 행정의 일환으로 시행되면 현대판 고려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공교육의 체계에서 죽음이 논해질 때입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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