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사자 명예훼손 혐의, 고의성 인정 땐 실형 가능성

입력
2019.03.11 18:19
수정
2019.03.11 20:3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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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사격 증언에 “거짓말쟁이”… 허위사실로 판단될 가능성 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법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광주=서재훈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법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광주=서재훈 기자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죄목은 사자(死者) 명예훼손죄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죽은 자의 명예를 훼손하면 걸리는 죄다. 산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실 적시’도 명예훼손이 되는 반면, 죽은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은 허위사실인 경우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재판의 쟁점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쓴 내용이 허위사실인지 △회고록을 쓸 당시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썼는지 두 가지다. 이 두 가지가 충족돼야 죄가 성립한다.

먼저 문제가 된 표현은 5ㆍ18 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살아 생전 폭로한 고인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이 후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밝힌 부분이다. 회고록 출간 시점인 2017년 4월 이전인 2017년 1월에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헬기 사격이 사실이라는 감정서를 내놓았다.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서술은 허위사실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국과수 연구 결과는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고의성을 인정받기에도 충분하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전 전 대통령 측은 사건 당시 헬기 사격이나 국과수 검증을 제대로 보고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고의성’을 피해 갈 것으로 보인다.

다음 관심은 유죄가 인정된다면 처벌 수위가 얼마나 될까다. 사자명예훼손죄에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실형 선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고영상 N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같은 명예훼손이라도 일반인들이 채팅방에서 얘기한 것과 고위공직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한 것은 다르다”며 “더구나 이번 전 전 대통령 사건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큼 법원도 이 사건을 그냥 단순한 사자명예훼손 사건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경찰 내부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차명계좌가 나오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발언해 유족들에게 고소당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막중한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경솔하게 허위 내용의 강의를 했다”며 “이는 일반인들이 견해를 표명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발언자의 지위, 그리고 그 지위에서 오는 파급력을 함께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극우인사 지만원씨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지씨는 2009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 등의 게시물을 올려 이듬해 재판에 넘겨졌다. 1ㆍ2심 모두 유죄를 받았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반면, 무죄 사례도 있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출판기념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독에 간 것은 맞지만 독재자였기 때문에 서독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았다”고 발언해 기소됐으나 1ㆍ2ㆍ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ㆍ2심 재판부는 “발언의 전체 취지가 진실에 부합한다”며 무죄로 봤고, 대법원 또한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o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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