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5개월째 월급 못 받아” “사채업자에게 쫓긴다” 증언 
 9일 현지 대사관, 한인 기업인 긴급 대책회의 
[저작권 한국일보]/2019-03-09(한국일보) 김창범(앞줄 왼쪽부터) 주인도네시아한국대사, 송창근 KOCHAM 회장, 이강현 KOCHAM 부회장 등이 9일 자카르타 KOCHAM 회의실에서 '에스카베(SKB) 한국인 사장 야반도주'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한국인 봉제업체 사장의 야반도주 사건(한국일보 3월 7일 1, 2면)과 관련해 긴급 대책 회의가 대사관과 한인 경제인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열렸다. 미지불 임금 해결을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현지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인 직원 5명도 5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창범 주인도네시아한국대사와 송창근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KOCHAM) 회장 등 대사관과 현지 기업인들은 9일 자카르타 KOCHAM 회의실에서 봉제업체 ㈜에스카베(SKB)의 한국인 사장 야반도주 사태에 대해 1시간 가량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SKB 중간 간부 A씨도 참석해 그간 사태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사는 모두 발언을 통해 “2,200여개 우리 기업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인도네시아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사건의 파장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이해 당사자들, 인도네시아 노동부 등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1월 29일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에게 ‘한국 사람이 잠적을 하고 월급을 받지 못했다, 도와달라’라는 내용의 57초짜리 동영상을 받은 후 즉시 대사관에 연락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문제의 업체가 KOCHAM 회원은 아니지만 한국 이미지 손상을 우려하고, 적은 월급으로 나날이 살아가고 있는 현지 노동자들의 처지를 감안해 지원 방법이 없을까 인도네시아 정부 등과 다섯 차례 면담을 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 따르면 SKB는 현재 공장 건물과 땅은 그대로 있는 만큼 사장 김모(68)씨에게 위임장을 받아 매각 등을 진행하면 돌파구가 열린다. 그러나 현재 잠적해 연락이 닿지 않은 김씨가 A씨에게 위임장을 줄 수도 있다는 구두 약속만 표명한 상태다. 게다가 SKB의 전 회장인 또 다른 김모씨가 주식반환소송을 걸어둔 상태라 그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 14일쯤 1심 판결이 예정돼 있지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 전 회장이 승소하게 되면 일이 더 꼬이게 된다.

[H2019030600366-1] 900억루피아(72억원)을 들고 지난해 10월 잠적한 에스카베(SKB) 대표 김모씨. SNS 캡처 /2019-03-06(한국일보)

A씨는 “한국인 직원들도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그는 “부채 변제 등 사장(김씨)이 시키는 대로 자금 집행을 했고, 대출을 받아 월급을 주라는 사장 지시가 있어 믿고 기다렸다”라며 “한국인 직원 5명도 5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고, 일부는 현지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지인 노동자들이 그런 과정을 잘 모르니 한국인 직원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억울해 했다. A씨는 “만약 김씨와 한통속이라면 (저도) 여기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A씨가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KOCHAM에 따르면 SKB는 오랫동안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문은 꾸준히 들어왔으나 자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원청업체인 S사와 H사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조영 공사는 회의가 끝난 뒤 “노동자 임금 처리가 최우선 목표”라며 “속지주의 원칙이라 권한은 없지만 KOCHAM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대사관이 최대한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건 해결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브카시 소재 봉제업체 SKB 사장 김씨가 지난해 10월 5일 직원 3,000여명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하면서 불거졌다. 무하마드 하니프 다키리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2019 코리안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 연사로 나서 “한두 명이 물을 흐려서 SKB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함께 성장하자(Together We Grow)’는 이번 주제처럼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여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한-인도네시아 간 신뢰문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 보도 직후인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인도네시아 당국과 수사 등 대응방안을 적극 공조하라”고 말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