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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 서강대 교수

여든인 노모가 TV 앞에서 뭔가 열심히 적고 계셨다. 통 소화도 안되고 심장검사도 할 때가 됐는데 바로 저 의사선생님께 가고 싶다며 이름을 외우고 계셨다. 노모가 간절히 뵙기를 원한 그 의사선생님은 종편의 유명 건강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노모는 그 의사를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파악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꼭’ 이란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말이다.

미디어에 건강을 붙여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종편 출범 후 더욱 많아진 건강 프로그램에는 주로 연예인을 포함한 입담 좋은 패널이 고정으로 나온다. 여기에 의학적으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들도 패널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초대된 전문가와 패널 사이를 기가 막히게 조율하는 MC들은, 교양과 예능의 경계를 능숙하게 넘나든다. 심각한 건강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를 더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다. 어떨 때보면 건강프로그램이 아니라 연예 프로그램으로 착각할 정도다.

패널로 출연한 의사들이 질환에 대해 조언을 하면 대체로 연예인 패널들의 ‘화들짝’ 놀란 표정이 이어지고, 가끔은 “본 의견은 전문가의 개인적 시각이며, 방송사의 견해와는 일치되지 않는다” 라는 자막이 매우 잠깐 떠있다가 사라진다. 시청률이 높으니 프로그램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여기에 출연한 의사들은 인지도가 상승할 것이다. 분명 환자유치에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 방송에 출연한 의사들이 자신의 출연한 프로그램을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여러 번 목격했다.

기왕이면 말 잘하고 똑똑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 것이 환자의 마음이다. 필자의 노모를 포함해 방송에서 얼굴을 알린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을 것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의사들은 홈쇼핑에도 출연해 소비자를 유혹한다. 상품 제조에 자문을 했거나,원료 배합에 참여는 물론이고 아예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상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이 분은 의사가 왜 됐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쇼(Show) 닥터’라고 비판을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솔직히 TV를 포함한 각종 미디어에 등장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의사들과 미디어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이 선택한 좁은 진료실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의사들 중 어느 쪽이 유능하고 실력도 있고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의사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방송에 출연했다는 것이 좋은 의사, 잘 고치는 의사, 즉 명의의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TV가 아니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 연관 사이트, 각종 의료ㆍ건강ㆍ보건과 관련된 사이트에서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날마다 건강과 관련된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수동적으로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건강을 챙기는 것이 현명한 의료소비자가 되는 길이다.‘건강한 100세’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미지나 감성보다 타당한 팩트에 이성적 판단을 동원해 의사ㆍ약ㆍ병원 등을 골라야 한다. 아주 깐깐하게 말이다.

유현재ㆍ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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