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2막!] “일평생 열중할 다섯가지 있다면 하루가 짧아”

입력
2019.03.06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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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서 퇴직 후 새 삶 꾸리는 이재헌씨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재헌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이사장은 “일과 어학, 운동, 악기, 신앙생활은 젊을 때뿐 아니라 평생을 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이재헌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이사장은 “일과 어학, 운동, 악기, 신앙생활은 젊을 때뿐 아니라 평생을 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일평생 열중할 일과 어학, 운동, 악기를 각각 한가지 잘하고 신앙생활을 하자.”

퇴직 후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재헌(66)씨의 책상 머리맡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붙어있다. “우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외국어 하나 이상을 유창하게 하자, 운동도 한 종목을 제대로 해 심신을 단련하고 악기도 하나 다뤄 정서적 안정감을 갖자, 마지막으로 종교를 가져 늘 겸손한 마음을 지니며 살자는 뜻입니다.” 30대 초반의 이씨가 천주교 구역 모임에 나갔다가 지금은 작고한 한 선배로부터 얻은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처세술이 인기였지만 왠지 이 얘기가 와 닿아 마음에 새겼었죠. 은퇴를 하면서 이제 다 끝이 났다 싶었는데 다시 한 번 의미를 되새겨 보니 이건 평생을 가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일평생 이 다섯 가지는 꼭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부담스러운 백세 인생이 아니라 나이듦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인생 2막에 들어선 이씨만의 비결이다. 30년 넘게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 쌓은 전문적인 경제금융 지식과 노하우가 자연스레 은퇴 이후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설립의 밑거름이 됐듯 말이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일의 큰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우선 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뇌 활동에 좋아 치매 예방 효과도 있는 어학공부도 적극 추천한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유창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게 그의 목표다. “영어 공부를 위해 주로 ‘미드’ CSI 시리즈나 셜록 홈즈 영문판 소설을 보는데 중간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매일 일본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써보고, 일본어회화책을 들춰본다. 젊었을 때는 등산과 테니스를 주로 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집 근처 둘레길을 혼자 걷는다. 특히 걸으면서 일본어 단어를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떠올리며 외우면 에너지도 두 배 이상 소모되는 것 같다고 이씨는 귀띔한다. 한 가지 아쉽지만 못 한 것은 악기를 다루는 일이다. 기타와 단소에 도전해봤지만 재능이 없어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재헌씨는 책상 머리맡에 ‘일평생 열중할 다섯 가지’를 요약한 글귀를 붙여놓고 매일 실천하고 있다. 이씨 제공
이재헌씨는 책상 머리맡에 ‘일평생 열중할 다섯 가지’를 요약한 글귀를 붙여놓고 매일 실천하고 있다. 이씨 제공

 ◇하루 한끼는 집밖서 해결이 원칙… 모임 추려내야 

은퇴하면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기 쉬운 만큼 이씨는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면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칭과 체조로 몸을 깨운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집 밖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그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은퇴를 하고 나니 한 동안은 주변에서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연락과 모임으로 정신없이 바빴다”며 “스스로 시간 관리가 안 될 정도라면 모임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도 분기마다 모이는 대학 동기 모임과 매주 수요일 열리는 기도모임, 두 달에 한 번 개최하는 다우리이엔씨협동조합 이사회 정도로 모임을 추려냈다. 그 동안 일만하고 살았던 만큼 이 참에 일과 삶을 잘 조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래선지 이씨는 현재가 만족스럽다. 일부 퇴직자는 청년들처럼 일하고 싶어하거나 자신이 밀려났다는 설움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이씨와는 먼 얘기다. “다시 생이 주어진다고 해도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현재 나에 만족하면서 남은 미래를 건강하고, 가족과 화목하게, 이웃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 할 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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