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하노이 지평선 너머를 보다

입력
2019.03.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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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역만 배석한채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역만 배석한채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디지털뉴스팀 입장에서 북한 관련 기사는 ‘계륵’과 같다. 독자와 이용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고,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그들이 즐겨 읽는 주제는 아닌 것으로 조사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의식 조사’ 당시 남북관계나 통일 관련 뉴스 관심도는 5점 만점에 2.70점. 뉴스 카테고리 중 꼴찌였다.

최근 조사인 2017년 ‘소셜미디어 이용자 조사’에서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자주 보거나 읽는 뉴스’ 관련 질문에서 상위권은 사건ㆍ사고ㆍ범죄(49.1%), 정치(46.4%), 연예ㆍ오락(45.3%) 등이 차지했다. 남북ㆍ북핵 문제(17.9%)는 역시 최하위권이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의 환희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 관련 경성 이슈는 정성을 들여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어도 독자보다는 언론과 관계자만 흥분하는 잔치인 적이 많았다.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고민은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미래를 좌우할 중요 이벤트인 만큼 특별 제작한 홈페이지 뉴스편집 틀(탬플릿)을 처음으로 활용하는 등 시시각각 뉴스를 전했다. 물론 뉴스 이용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지만. 지난달 28일 오후 예정됐던 북미 정상의 하노이선언 서명식이 취소된 뒤 서너 시간 동안 오전보다 뉴스 소비량이 두 배 가까이 치솟기는 했어도, 오히려 뉴스 이용자들의 관심은 6억원이 들었다는 그룹 빅뱅 멤버 승리의 생일파티 기사에 더 쏠렸던 게 현실이다.

회담 후 사흘이 흘렀다. 기다렸다는 듯 ‘실패한 정상회담’ 얘기만 주로 나온다. 그러나 북한 탓, 미국 탓 삿대질보다는 회담 결렬에서 챙겨야 할 교훈이 먼저다.

“우리는 처음으로 수평선 너머를 보았다.” 1986년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 결렬 직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했던 말이다. 미소 군비경쟁 상징이었던 미국의 ‘스타워즈’ 전략방위구상(SDI)을 두고 ‘실험실 수준 제한’이란 한 문구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 양국 정상은 합의문에 서명을 못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수준이 무엇인가는 알았다는 점이다. 또 SDI가 실은 허황된 기술이었다는 게 나중에 드러나면서 쟁점이 사라지자 1년여 뒤 워싱턴 정상회담을 거쳐 양국은 군축 합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실패했다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이제 ‘냉전 종식의 전환점’으로 평가 받는다. (김연철, 협상의 전략)

겨울을 끝내는 봄이 언제 쉽게 오던가. 2차 북미 회담 결렬 후 영변 이외 핵시설 폐기, 대북제재 완화 정도 등을 두고 앞으로도 지루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실패한 회담을 핑계 삼아 강경파들은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다시 대결의 시대로 몰고 가려 할 것이다. 쉽게 틈을 줘선 안 된다.

북핵 이슈는 30년 묵은 난제다. 켜켜이 쌓인 오해와 불신이 한 두 차례 대화로 일거에 해소될 리 없다. 해법은 역지사지 자세와 인내뿐이다. 단계적으로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챙겨나가겠다던 북한은 한 술에 모든 밥을 다 챙기겠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미국도 김정일이 아닌 ‘김정은 시대’ 북한의 달라진 협상 의지는 재평가한 뒤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 트위터에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받아야만 하는 것들을 서로 알게 됐다”고 했고, 북한도 회담 결렬 사실 대신 대화 재개 의지를 앞세워 보도했다. SDI의 진실이 드러나며 미소 양국이 접점을 찾았듯, 북미가 지혜를 짜내고 한국이 거든다면 우리도 핵 없는 한반도로 가는 첫 ‘깔딱고개’를 넘어설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양국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핵심 쟁점에 대해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대화했다”고 레이캬비크 회담 성과를 평가했다. 북미도 이제 상대의 속마음을 확인한 만큼 다시 대화에 속도를 내길 바란다. 그래서 1년 뒤쯤 ‘그 때 하노이에서 처음으로 지평선 너머를 봤다’고 회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상원 디지털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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