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미선나무 100년

입력
2019.02.27 04:40
29면
고산 율지리 미선나무
고산 율지리 미선나무

미선나무를 아시는지요? 초등학교 때 ‘천연기념물 충북 괴산 미선나무 자생지’를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무는 대학에 들어와 대학 수목원에 심어진 어린 나무들을 본 게 처음이었지요. 이 미선나무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기 때문입니다. 특산식물이란 지구상에서 오직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니 우리를 대표하는 나무의 하나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 보태어 미선나무는 1속(屬) 1종(種)이라고 하는 귀한 식물집안 나무입니다. 그래서 몇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때 귀한 나무로 알려지자 몰래 캐가 아예 자생지에서 사라져버려 천연기념물지정이 해제된 일도 있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독일의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부끄러운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부인이 한국식물을 보고 싶다 하여 경기의 한 식물원을 찾았는데 동행했던 학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않은 미선나무를 보고는 매우 반가워하며, 한국의 나무라고 알려주고 라틴어 학명(學名)까지 말해줬다는 것입니다. 선진국 사람들의 식물에 대한 식견과 애정에 놀라고 우리 나무의 가치조차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현실을 절감하였지요.

미선나무 꽃
미선나무 꽃

하지만 식물을 공부하는 저마저 미선나무를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후입니다. 나른 나른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언 땅이 녹고 삐죽삐죽 새싹들이 올라오며 나뭇가지에선 잎눈이며 꽃눈이며 움찍거리고 있지만 아직 화사한 봄꽃나무들의 향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수목원이 여전히 무채색으로 느껴질 즈음, 수생식물원 정자 옆에서 가녀린 나무줄기마다 가득가득 꽃을 피워낸 미선나무 한 무리를 보았습니다. 개나리와 유사하지만 꽃이 작고 흰빛인데다가 제대로 자라지 않은 어린 묘목에 핀 꽃들을 만나왔던 탓에 그간 그 가치에 비해 아름다움을 절감해보지 않았었나 봅니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 순백의 꽃송이들은 주위의 환경에 스며든 것처럼 어찌나 은은하고 소박하면서도 기품있던지.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향기였습니다. 미선나무 꽃빛과 자태에 꼭 어울리는 맑은 향기가 퍼져 나와 꽃나무에 다가서기 전부터 두근두근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미선나무를 글로 배우기 시작하여 삼십 년 이상 지나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지요.

부채를 닮은 미선나무 열매
부채를 닮은 미선나무 열매

올해는 이 미선나무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된 해입니다. 미선나무를 처음 발견한 분은 1917년 정태현 박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나무가 아벨리오필럼 디스티쿰(Abeliophyllum distichum Nakai)이라는 학명으로 공표된 것은 1919년 그의 일본인 스승인 나카이박사에 의해서이며, 이를 증거하는 기준표본은 일본 도쿄대학교 표본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 미선나무를 위한 여러 노력이 보태어져 대부분의 자생지는 보전되어 있고, 주요 자생지인 괴산군에서는 이를 대량증식하여 향기축제도 합니다. 저희 국립수목원에서는 학술적으로 유전체 분석까지 하여 이 나무의 기원과 자원화를 위한 유전정보들도 축적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미선나무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아름다움과 향기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3ㆍ1운동 100주년입니다. 독립한다는 의미는 주권을 위한 노력이고,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보전하며, 그 가치를 발굴하고 활용하여 이를 토대로 세계가 알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이 나무를 꼭 심어보고 싶으시거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정보 하나를 보태면 27일 수요일 오전 11시30분부터 국회 숲속도서관 앞에서 나무를 나누어드릴 예정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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