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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브랜드 K2의 모델 배우 배수지. K2는 배수지가 출연하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5월 방송 예정)에 PPL을 하지 않기로 했다. K2 제공

“소화가 안되면 ‘카베진’ 먹으면 되지, 왜 주사를 맞아?”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 사범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소화제 이름이 툭 튀어나온다. 이 영화에는 “‘라꾸라꾸’에 쭈그리고 자면서…” “제일 비싼 ‘일품 진로’ 소주로 주세요” 등 실제 제품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를 간접광고(PPL)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아니다. 현실감을 돋보이게 해 서민적인 웃음을 살리겠다는 감독의 의도일 뿐이다.

PPL을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기 드라마에 제품이 등장했다 하면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거액의 PPL을 해도 덕을 못 보거나 PPL 없이도 비슷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생기면서 더 이상 PPL에 목 매지 않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이 영화에는 여러 제품명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대부분은 PPL(간접광고)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게서 사용허가만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타도 겨울 아니면 매력 없어” 

‘극한직업’의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 영화에 PPL을 한 기업은 거의 없다. 대신 감독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제작진이 일일이 관련 기업에 연락해 ‘사용 허가’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거리에 나오는 휴대폰 대리점 상호 간판까지 사용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귀띔했다.

영화는 기업들이 PPL을 기피하는 매체 중 하나다. ‘극한직업’은 관객 1,600만명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지만, 개봉 전 배급사 측에서 상품명 사용 허가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당시 눈도 깜짝 안 했다. 그 중 한 기업 관계자는 “제아무리 톱스타가 출연해도 영화에는 PPL을 하지 않는다”며 “언제 개봉할지 모르고, 개봉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 시장에선 눈을 돌렸어도 방송 PPL은 기업들이 여전히 신경을 쓴다. SPC그룹은 최근 적극적인 PPL로 가장 크게 덕 본 기업으로 꼽힌다. SPC는 드라마 ‘도깨비’를 성공리에 마친 김은숙 작가 측에 “차기작에 무조건 PPL”을 먼저 제안했고, 지난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10억원 안팎의 PPL 투자를 감행했다. 김 작가는 1900년대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 파리바게뜨를 ‘불란서 제빵소’로 소환했다. 누가 봐도 파리바게뜨의 PPL이었지만, 시대상을 고려한 재치 있는 설정 덕분에 시청자도 SPC그룹도 웃었다.

요즘 기업들은 출연진의 유명세나 인기보다는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보는 등 방송 PPL에 대해 까다로운 전략을 앞세우는 경향이 커졌다. 아웃도어 브랜드 K2는 오는 5월 자사 모델인 배우 배수지와 정해인이 각각 출연하는 드라마 ‘배가본드’와 ‘봄밤’에 PPL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K2 관계자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겨울이 대목”이라며 “두 드라마가 모두 봄에 방영하는 터라 PPL을 해도 큰 성과가 없을 것으로 내부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배우 송혜교가 아모레퍼시픽의 한방 브랜드 ‘설화수’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출연한 배우 손예진이 화장을 하고 있는 모습. 방송 화면 캡처
 ‘송혜교 립스틱’ 떴는데, ‘손예진 립스틱’은… 

특히 화장품업계에선 방송 PPL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드라마 속 브랜드 노출 횟수 등에 따라 PPL 비용이 책정되는데, 기업들은 많게는 5억~10억원 이상을 낸다. 배우 이름을 앞에 붙여 ‘000 립스틱’, ‘000 마스카라’ 등으로 광고하면 종종 ‘완판’되기도 하니 영화처럼 딱 잘라 거절하기 쉽지 않다.

아모레퍼시픽은 드라마 ‘남자친구’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배우 송혜교, 박보검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7~8%에 머물렀다. 그만큼 PPL 효과가 미미했고, 젊은층을 겨냥한 이미지 구축에도 득을 못 봤다는 게 아모레퍼시픽 내부 분석이다. 그나마 드라마 속에서 송혜교가 바른 립스틱의 지난 1월 판매량이 지난해 12월과 비교해 6배가 증가한 덕에 체면을 살렸다.

반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PPL을 놓쳐 땅을 쳤다. 지난해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PPL 제안을 거절해서다. 당시 미샤는 자사 모델인 배우 손예진이 출연하지만, 5년 만의 TV 복귀인 데다 내용도 시청률이 높지 않은 로맨스여서 PPL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승승장구했다. 미샤는 뒤늦게 PPL 기회를 노렸으나, 비용이 2배 이상 뛰면서 속만 끓여야 했다. 손예진이 드라마 속에서 미샤 제품을 사용하며 ‘의리’를 지켰지만, 실제 방송에선 미샤 로고가 모자이크 처리됐다.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PPL에 대해 기업들의 기대치는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영화나 방송을 활용한 PPL은 워낙 고액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점점 줄어들 것”이라며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 등 젊은 소비층을 잡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의 PPL보다는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한 참신한 마케팅을 더 활발히 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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