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같던 주간활동서비스, 탄식이 나온 이유

입력
2019.02.26 04:40
28면

 [장애인 엄마, 세상에 외치다] <18> 주간활동서비스의 꼼수 

3월부터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인 ‘주간활동서비스(이하 주활)’가 시작된다. 주활이 시작된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해 발달장애 자식을 둔 부모들이 청와대 앞에서 대규모 삭발을 하고 광화문에서 삼보일배를 하며‘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했는데 정부는 이에 화답하기 위해 최근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주활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주활이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발달장애인이 낮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여러 활동 프로그램을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다. 장애가 없는 우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다양한 일상생활, 그러니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등산이나 농구를 하고, 미술활동이나 음악활동을 하거나 독서 모임을 갖는 일 등을 발달장애인도 할 수 있도록 기관과 프로그램과 인력을 나라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11살의 지적장애 아들을 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쩌나” 걱정해왔던 나에게도 단비 같은 소식이다. 성인이 된 아들을 늙고 힘 빠진 내가 24시간 돌보며 집에만 있어야 할 줄 알았던 미래가 조금은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난 18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주활 서비스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다 이내 탄식이 나온다. 발달장애인의 복지 영역이 새롭게 늘어난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새로운 서비스를 받으려면 기존에 받던 서비스를 내놓아야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그래픽=김경진기자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그래픽=김경진기자

 ◇활동보조서비스 차감 

‘활동보조서비스(이하 활보)’라는 것이 있다. 활동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들어가서 헷갈리곤 하는데 주활과 활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말 그대로 장애 당사자의 활동을 보조한다는 게 활보 서비스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활보 서비스를 이용했다. 장애가 없는 쌍둥이 딸은 학교가 끝나면 혼자서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장에 갔다 집에 왔는데 아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른의 손길이 하루종일 필요했다. 그런데 활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활동영역은 크게 늘어났다. 오후에 사용할 수 있는 몇 시간이 더 주어졌을 뿐이지만 비록 프리랜서일지언정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활보 서비스는 장애 당사자는 물론 돌봄의 역할을 담당한 가족들의 삶까지 바꾸는 중요한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보건복지부안을 보면 주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기존에 사용하던 활보 서비스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새로운 복지제도가 신설된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무상급식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학생들의 교복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고 가정해 보자. 드디어 교복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겠다며 좋아했더니 교복 지원을 받으려면 무상급식을 포기하고 얼마씩 자가부담을 하라고 한다. 이것이 새로운 정책일까 아닐까?

아니다. 이건 복지의 확충이 아니다. 복지의 파이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이리저리 서비스 갈아타기를 하는 것뿐이다. 지금 발표된 주활 서비스가 그렇다. 주활을 받으려면 활보를 내놓아야 한다. 엄마인 나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유일한 서비스를 내놓으라 

활보 서비스 차감이 더 나쁘다고 여겨지는 건 성인 발달장애인이 유일하게 받는 복지혜택이 바로 활보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아들은 발달재활 서비스도 받고 활보 서비스도 받는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모든 서비스가 끊긴다. 성인 발달장애인은 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지 재활서비스도 중단되고 낮에 갈 곳도 없다. 학교를 졸업한 뒤엔 취업을 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16.5%에 불과하다. 온 나라가 청년 실업이 큰일이라며 걱정하지만 발달장애인 실업률에 비할쏘냐.

낮에 갈 데라곤 평생교육센터나 보호소 등인데 이마저도 엄청난 경쟁률 때문에 몇 년씩 대기를 한다. 간신히 들어가고 나서도 일정 기간 후엔 나와야 한다. 새로운 대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발달장애인 자식과 늙은 노부모의 삶을 생각해 보라. 매년 들리는 동반자살 소식은 부모의 우울증 때문이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그걸 간과해선 안 된다.

그나마 성인이 되어도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활보다. 이마저도 성인이 되면 학령기 때보다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다. 현재 아들은 월 128시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 100시간 아래로 훌쩍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복지부에선 주활을 받기 위해 활보 시간을 더 차감하라고 한다. ‘이중 혜택’이라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이중 혜택이 아닌 이유 

이중 혜택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 본다. 시계를 9년 후로 빠르게 돌려본다. 아들이 20살의 성인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장애의 정도가 가벼운 발달장애인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하는 곳에 다니고 취업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지만, 장애의 정도가 중한 아들은 어른이 되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혼자서 집 밖에 나서는 순간 가족들과 영영 생이별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내가 자주 꾸는 꿈 중에 하나는 성인이 된 아들이 앞으로 달려나가고 늙은 내가 그 뒤를 힘겹게 쫓아가다 결국 시야에서 놓쳐 아들이 사라지는 꿈이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영영 생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실제로 발달장애 부모들이 모인 단톡방에는 잊을만하면 아이들의 실종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때마다 내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아, 그래도 다행히 실종 소식이 올라온 아이들은 온 동네 이웃들이 합심해 밤새 찾아다녀 다음날 무사히 발견되곤 했다.

어쨌든 이렇게 장애 정도가 중한 아들은 나 아니면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어야만 외출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다. 아니,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에 혼자 있던 성인 발달장애인이 고혈압약을 한 번에 여러 봉지를 먹고 사고사한 게 바로 몇 달 전 일이다.

그런데 주활을 이용하기 위해 활보 시간을 대폭 차감(기본형은 44시간, 확장형은 72시간 차감)하면 아들은 생활의 중심이 주활이 되어야만 한다. 시스템에 의해 그래야만 한다. 주활 센터까지 오가기 위한 이동시간에 할당 받은 활보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나면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활보 시간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부턴 또다시 가족이 아들의 활동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내가 옆에 있는 동안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만약 9년 후에 내가 옆에 없다면? 7년 뒤에 교통사고를 당하면? 12년 뒤에 암에 걸리면? 20년 뒤에 중풍이 오면? 그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을 돌봐야 할까? 아니면 쌍둥이 딸이 남동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할까?

중증 장애인의 활보 서비스 시간을 24시간으로 늘려달라는 요구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을 뻔히 아는 복지부가 주활을 위해 활보 시간을 차감하겠다 발표한 건 그래서 나쁘다. 몰라서 한 실수는 알면 바뀌지만, 알면서 한 행위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조치의 의도는 ‘예산 줄이기’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복지로는 장난을 치면 안 된다. 신규 서비스인 척 자랑하면서 사실은 파이 나누기를 하려는 게 바로 장난이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복지’지만 누군가에겐 ‘삶’이다. 복지정책은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정부는, 정책 실무자들은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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