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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간발표로 집중 조명

지난 2월 8일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가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무작위로 추출된 2,000명의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편적 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 실험의 중간 결과 발표가 있었다. 실험집단에게는 다른 소득이나 구직활동 유무와 상관없이 매월 560유로(현재 환율기준 약 71만6,000원)의 기본소득을 과세 없이 지급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은 5,000명의 통제집단과 (1)직업 상태 (2)소득 (3)웰빙 수준의 변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번 발표는 첫 1년 치에 대한 분석 결과로서 1년간의 기본소득제공이 고용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주관적 웰빙 영역에서는 뚜렷한 효과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직 결과를 속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대전의 청년들이 후원금을 모아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일명 '띄어쓰기 프로젝트'로 3명의 청년을 추첨해 6개월간 월 50만원을 지급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으로 다른 삶을 상상할 여유를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국, 프랑스 ‘기본소득제’ 찬반 팽팽

기본소득제 논란이 시작된 서구유럽을 보면 국가별로 기본소득 인식에 큰 편차가 발견된다. 2016~17년 실시한 유럽사회조사(ESS) 18개국 조사에서는 정부가 최저 생계가 가능한 수준(지원 부담)의 기본소득을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조건의 부재) 모든 국민에서 일괄적으로 지불될 것(보편적 혜택)임을 명시한 조건에서 찬반을 물어보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이스라엘, 슬로베니아, 벨기에, 폴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정도 순으로 찬성이 반대를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선 나라로 나타났다. 반면 노르웨이, 스위스,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 국가나 독일, 아이슬란드,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에서는 반대가 다수 여론이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는 찬반이 팽팽한 수준이다. 한편 2017년 미국 갤럽과 노스이스턴 대학의 조사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직장을 잃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서 보편적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48%, 반대 52%로 팽팽했다. 유럽의 경우 비용 규모와 부담 조건을 감안한 질문 방식이라면 미국 조사의 경우 최근 위협이 되는 기술실업의 맥락을 고려한 질문 방식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한국인 68% “기본소득제, 잘 모른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몇몇 지자체를 중심으로 청년기본소득제 등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기본소득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핀란드의 실험 보도가 있기 전인 지난 1월 18~21일에 실시한 첫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 정도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3%,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다’는 의견이 29%로 기본소득제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응답이 32%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몇 번 들어본 정도’라는 응답은 36%,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응답도 32%로 68%는 기본소득제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을 기준으로 보면 남성이 37%, 여성이 27%로 차이가 날 뿐 세대별,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인공지능 시대, 기본소득제 찬성 63%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일까. 한국리서치의 웹조사에서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미국처럼 4차산업 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되는 맥락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제시문을 제공한 후 찬반을 물어보았다.

※기본소득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소득감소에 대응하여 근로 여부와 상관 없이 전 국민에게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매우 찬성이 13%, 대체로 찬성이 50%로 63%가 긍정적인 답을 했다. 남녀는 각각 62%, 65%, 세대별로는 40대에서 찬성이 70%로 가장 높고, 50대 65%, 30대 63%, 20대 62%, 60대 60%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지역별 총생산이 가장 낮은 대구ㆍ경북(70%), 광주ㆍ전라(68%) 지역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성별, 세대별, 지역별 차이는 통계적(카이제곱 검정)으로 유의한 차이는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대체로 젊은 세대와 여성이 상대적으로 찬성이 높고, 고령층과 남성에서 찬성이 낮은 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의 경우 뚜렷한 차이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다만 이념적으로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진보성향일수록 찬성 비율이 높고(73%), 보수성향일수록 찬성이 낮게 나타났다(52%).

◇기본소득제 인지하면 찬성비율 높아

보수성이 강한 계층에서도 찬성 여론이 과반을 넘을 뿐 아니라 기본소득제 내용을 인지하는 집단일수록 찬성비율이 높다는 것은 기본소득제 확산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기본소득제 내용을 알고 있는 집단(구체적으로+대략적으로)이 그렇지 않은 집단(한 두 번 들어봤다+전혀 못 들어봤다)에 비해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성비율 높게 나타났다. 내용을 알고 있다는 집단에서 찬성이 72%, 내용을 모른다고 답한 집단에서는 60%에 그쳤다. 향후 기본소득제에 대한 내용이 알려질수록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제 찬성 여론이 공고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제는 최적의 기본소득제 옵션 찾기

그러나 기본소득제의 전망이 순탄치 만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유럽처럼 지원 규모와 부담이 구체화될 경우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토 여론이 강화될 수 있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적정한 기본소득 옵션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수의 합의가 가능한 기본소득 규모를 가늠해보기 위해 월 기본소득 옵션을 10만원 미만에서 200만원 이상까지 7단계로 나눈 후 각각에 대해 수용 가능 여부를 물어보았다. 어떤 옵션에 대해서도 수용 가능하다는 응답비율은 과반을 넘지 못했고 모든 옵션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이 앞섰다. 월 10만~30만원 미만 옵션에 대해 동의하는 비율이 34%, 30만~50만원 미만 옵션에 대해 29%, 10만원 미만 옵션에 대해 28% 순으로 나타났다. 50만원 이상 옵션들에 대해서는 수용 비율이 일관되게 떨어지고 있다. 기본소득제의 기본 취지에 동감하지만 막상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보편성), 고용 및 기타 소득 여부와 상관없이(무조건성) 현금을 지급할 상황에서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할 최적의 기본소득 옵션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본소득 찬성 집단도 수용비율 과반 안 돼

다만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집단에서는 10만~30만원 미만이 40%, 30만~50만원 미만 39%로 비슷했고, 50만~100만원 미만까지 수용 가능하다는 응답도 34%로 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수용비율이 증가한다. 그러나 모든 옵션에 대해 찬성집단에서조차 수용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수용 여론을 앞서고 있어 다수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기본소득 옵션을 찾기 어렵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성 여론이 현재보다 크게 확대되어야 타협 가능한 기본소득 옵션 마련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

※한국리서치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매월 실시하는 정기 웹 조사 <여론 속의 여론>를 통해 한국인의 기본소득제에 대한 인식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그 결과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순차적으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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