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세심한 맛] 소금에 절여 꼬들꼬들해진 연어 드셔보셨어요?

입력
2019.02.23 04:40
수정
2019.02.25 14:05
15면
살이 부드럽고 풍성한 연어가 최근에는 광어를 제치고 국민 횟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살이 부드럽고 풍성한 연어가 최근에는 광어를 제치고 국민 횟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요리는 철저히 독학으로 배웠다. 어릴 때에는 집에 있던 서른 세 권짜리 ‘삼성 가정요리 990’(삼성출판사)을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미국에서 8년 동안 살면서 너무 할 일이 없어 ‘푸드 네트워크’나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의 요리 시연을 보고 레시피를 숙독한 뒤 따라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돈을 내고 들은 요리 수업이 있으니 바로 ‘칼질의 기초’ 였다. 물론 칼질을 할 줄 몰라서 배우러 간 것은 아니었다. 동네의 조리기구 전문 매장에서 여는 수업이었는데, 수강 후에는 이후의 요리 수업에 무보수 조교로 참가할 수 있는 특혜 아닌 특혜를 준다고 했다.

칼질을 할 줄 알거나 모르거나 수업은 굉장히 유익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독학으로만 깨우쳤던 칼 사용법을 조금 더 정확하고 꼼꼼하게 짚어 볼 기회였다고 할까. 벗기고 썰고 다듬는 가운데 가장 유익한 요령은 연어 껍질 벗기기였다. 수직으로 반 가른 연어를 평평한 도마 혹은 작업대에 올린다. 꼬리 쪽 끝에서 2~3㎝ 떨어진 지점의 살에 칼집을 넣는다(껍질까지 잘라내지 않도록 주의한다). 칼집을 중심으로 꼬리 쪽 살을 잡고 칼은 날을 수평으로 눕혀 몸통 쪽으로 향한다. 칼은 그대로 두고 꼬리 쪽 살을 지그재그로 천천히 움직여 슬금슬금 껍질을 벗겨낸다. 손잡이 역할을 맡는 꼬리 쪽 살이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종이 행주 등으로 싸서 잡는 것도 좋다. 연어처럼 큰 종류는 물론 청어처럼 작은 생선에도 두루 쓸 수 있는 손질법이다. 손질한 연어는 먹기 좋게 토막 쳐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일반적인 가스레인지 등의 화구와 달리 위에서 불이 내려오는 브로일러에 익힌다. 날로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니 살 표면의 색이 바뀔 때까지만 살짝 익힌다. 속살이 익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맛있지, 완전히 구워 버리면 비려질 수 있다.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는다. 수업은 아주 유익했지만 귀찮아서 이후 요리 수업에 조교로 참가하지는 않았다. 

과거에는 오래 보관하려고 연어를 훈연했지만 최근에는 향과 맛을 내기 위해 훈연하는 경우가 많아 연어 본연의 맛을 해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과거에는 오래 보관하려고 연어를 훈연했지만 최근에는 향과 맛을 내기 위해 훈연하는 경우가 많아 연어 본연의 맛을 해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훈연향 첨가한 ‘마트 연어’

최근 뉴스에 의하면 ‘국민 횟감’의 자리를 오래 누려왔던 광어가 방어와 연어에 밀리고 있다고 한다. 광어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방어나 연어 모두 광어에 비해 살이 훨씬 더 풍성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횟감으로 먹기도 바쁘지만 다른 요령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염장이다. 그런데 염장 연어는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굳이 힘들여 만들 필요가 있는 걸까? 물론 있다. 마트에서 파는 연어를 두루 먹어보니 일단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훈연향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훈연은 ‘연기 훈’자를 쓰는 데서 알 수 있듯 나무 혹은 풀을 불완전 연소시켜 나는 연기를 식재료에 쐬어 보존 기간을 늘리는 식품 가공법이다. 연기의 입자가 식재료의 표면에 산성의 막을 입히는 원리이다. 연기를 쏘일 뿐만 아니라 불로 재료를 익히는 단계까지 나가는 가공법을 따뜻한 훈연(온훈), 단지 연기만 쏘여서 보존을 위한 막과 향을 입히는 가공법을 차가운 훈연(냉훈)이라 일컫는다. 

연어는 회로 즐겨 먹는 생선이니 온훈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대체로 냉훈 과정을 거친다. 다만 냉장 유통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보존으로서의 훈연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노르웨이에서 냉장상태로 수입한 연어를 국내에서 가공해서 진공 포장해 팔 수 있는 여건이므로 굳이 연기의 막을 씌울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훈연은 향을 더하는 수준으로만 쓰이는데 바로 그게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훈연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현실에서 향을 필요 이상으로 불어 넣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연기를 쏘이는 경우도 있지만 훈연향만 첨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연기를 물과 접촉시켜 액화시키는 응축 공정으로 모아서 액체는 물론 분말 형태의 조미료(스모킹 후레바)를 만든다. 냉동냉장 기술의 발달로 훈연의 의미와 역할이 축소되었으니 맛만 내는 용도로는 ‘후레바’가 더 효율적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기름기가 많고 풍성한 연어마저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말이 좋아 ‘훈연향’이지 식물을 태워 나는 연기를 쏘이는 가공법이니 엄밀히 말하면 ‘탄내’가 배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겨울에 논에서 짚불을 때고 놀다 보면 옷에 배는 냄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금과 설탕을 넉넉히 준비하고 오렌지나 레몬 껍질만 있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쉽게 연어를 염장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소금과 설탕을 넉넉히 준비하고 오렌지나 레몬 껍질만 있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쉽게 연어를 염장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집에서 연어 염장하려면

그래서 집에서 절인다면 아예 훈연향을 배제해 깔끔한 맛의 연어를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파는 것을 사와 포장만 뜯어 먹는 것보다는 수고가 조금 더 들지만 그만큼은 내가 원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많은 장기 보관용 식품 가공법 가운데서도 염장이라 불을 피울 필요도 없는 등, 조리 과정이 지극히 단순하다. 게다가 맛이 드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 불과 24시간이면 식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니 한 번쯤 시도해보자. 일단 연어를 준비한다. 이탈리아의 햄 프로슈토 같은 음식이나 한국의 대표 밥반찬 가운데 하나인 조기, 자반 고등어 등에서 볼 수 있듯 염장은 대체로 동물 혹은 부위 전체를 소금에 절인다. 부피가 일정 수준 확보 되어야 염장의 혜택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결국 식재료에서 수분을 빼서 미생물의 번식인 부패를 막는 가공법이므로 부피가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어를 반 마리 정도 통째로 준비한다.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 맛도 함께 달아나니 연어의 껍질은 조리 혹은 가공이 끝난 뒤에 벗겨도 충분하지만, 대체로 현재의 한국에서는 그렇게 파는 경우가 드물어 껍질이 없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사온다. 맛에서 조금 손해를 보겠지만 거의 아무런 손질 없이 그대로 염장할 수 있으므로 편하다. 자반고등어 혹은 포기김치를 위한 배추도 그렇듯 넉넉한 소금이 염장의 관건이다. 1~1.5㎏의 연어 반 마리를 기준으로 소금 225g, 설탕 100g을 준비해 그릇에 잘 섞는다. 연어가 넉넉히 담길만한 쟁반(혹은 제과제빵용 팬)에 은박지를 연어보다 크게 두 겹으로 깐다. 아랫부분에도 간이 잘 배도록 은박지 위에 소금과 설탕을 섞은 것의 3분의 1을 솔솔 뿌린 뒤 연어를 올린다. 

그리고 향을 불어 넣을 시트러스류의 껍질을 강판으로 살살 갈아 올린다. 레몬, 라임, 오렌지, 그레이프프루트 모두 쓸 수 있지만 바로 지난 회에 살펴본, 요즘 흔한 오렌지 껍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연어의 특유의 연한 오렌지색 살 위로 진짜 오렌지색이 빼곡하게 올라 앉도록, 4큰술 정도 넉넉하게 갈아 올린다. 그리고 남은 소금과 설탕으로 덮은 뒤 은박지를 편지봉투처럼 완전히 오므려 연어를 감싼다. 밑에 한 겹 남은 은박지로도 똑같이 연어를 감싼다. 수분을 더 잘 빼려면 통조림이나 냄비 등, 무거운 물건을 올려 냉장보관한다. 생각보다도 수분이 많이 나올 수 있으므로 은박지로 두 겹을 쌌더라도 짚백 등에 한 번 더 담는 게 속 편하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양껏 바르고 사이에 염장 연어를 넣고, 적양파 등을 곁들이면 맛있는 크림치즈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양껏 바르고 사이에 염장 연어를 넣고, 적양파 등을 곁들이면 맛있는 크림치즈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염장 연어 맛있게 즐기려면

24시간이 지나면 연어를 꺼내 싸고 있던 은박지와 소금 등을 모두 버린다. 연어는 물로 깨끗하게 씻어 종이 행주에 올려 물기를 말끔히 걷어낸다. 이제 시트러스 향이 물씬 풍기는 염장 연어가 완성되었다. 물기가 많이 빠져 꼬들꼬들한데다가 소금에 절여 짭짤하니 회보다는 훨씬 얇게 저며 먹는 게 좋다.  대신 단면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칼을 30도 정도 기울여 연어를 저민다. 이제 어떻게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서양식이라면 크림치즈 베이글 샌드위치가 정석 가운데 하나이다. 반 갈라 살짝 구워 바삭함을 북돋운 베이글 크림치즈를 양껏, 정말 양껏 바르고 사이에 염장 연어를 끼운다. 크림치즈의 지방을 덧대어 연어의 풍성함이 한결 더 살아나는 가운데 바삭하고도 쫄깃한 베이글이 깔아주는 탄수화물의 바탕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맛을 끌어내 준다. 

양파, 케이퍼, 생크림, 레몬 등 다양한 식재료와 연어는 균형적인 맛을 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양파, 케이퍼, 생크림, 레몬 등 다양한 식재료와 연어는 균형적인 맛을 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샌드위치보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먹고 싶다면 뷔페의 차림새를 집에서 재현한다. 접시에 저민 연어를 가지런히 담고 양파(적양파가 조금 더 잘 어울린다)와 케이퍼(서양 풍조목의 꽃봉오리 절임으로 입안에서 터지면서 강렬한 짠맛의 방점을 찍어준다), 그리고 크렘 프레슈(Crème fraîche)를 함께 낸다. 크렘 프레슈는 꾸덕하게 발효시킨 생크림으로 인터넷의 치즈 전문점이나 백화점 식품 매장의 치즈 코너에서 살 수 있다. 발효 덕분에 요거트 수준은 아니지만 끝에 남는 신맛이 연어의 풍성함에 균형을 잡아줘 단짝인데, 찾기 어렵다면 크림치즈, 마스카르포네 치즈, 리코타 치즈 등으로 그럭저럭 대체할 수 있다. 베이글 샌드위치처럼 탄수화물을 곁들여 줘야 맛이 나는데, 얇게 썰어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나 크래커 등도 좋지만 케이퍼나 양파 같은 부재료까지 감안하면 싸먹을 수 있는 밀전병이나 토르티야 등이 조금 더 잘 어울린다. 한식의 밥 반찬으로 먹고 싶다면 저미거나 다져 오이, 양파 등과 초무침을 만들면 맛있다. 연어 반 마리면 부피가 줄었더라도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니 적당히 썰어 랩으로 싸 지퍼백에 담아 냉동보관한다. 그리고 먹기 전날 밤 냉장실로 옮겨 해동한다. 

얇게 저미거나 다진 연어를 오이에 돌돌 말면 한식의 밥 반찬으로도 즐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얇게 저미거나 다진 연어를 오이에 돌돌 말면 한식의 밥 반찬으로도 즐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굳이 통으로 연어를 소금에 절이고 싶지는 않지만 맛은 궁금하다면 나름의 절충안이 있다. 넉넉한 대접에 물 625㎖를 담고 소금 120g, 설탕 65g을 녹여 염지액을 만든다. 썬 연어를 담가 3분 두었다가 건져 채반이나 제과제빵용 식힘망, 둘 다 없다면 석쇠에 올려 종이행주로 물기를 걷어낸다. 이미 맛이 들었으니 바로 먹어도 좋지만 냉장고에 2, 3시간 차게 두어 같은 요령으로 먹는다. 연어를 썰어 표면적을 넓혀 아주 짧은 시간에 맛을 들이는 게 핵심이므로 떠온 횟감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 다만 어떻게 생연어를 먹더라도 식품 안전에 각별히 신경쓴다. 

회든 소금에 절였든 겉만 살짝 구웠든, 어떻게 요리했더라도 맛을 한층 더 북돋아줄, 화룡점정격의 식재료가 있다. 지난 10월에 절였던 레몬 껍질(본보 2018년 10월 27일자)를 기억하는가? 만약 그때 담갔다면 딱 4개월이 되었으니 맛이 아주 잘 들었을 것이다. 아주 곱게 다져 굽거나 염장했다면 위에 솔솔 뿌려 먹고, 회라면 간장에 와사비처럼 더해 찍어 먹는다. 

연어를 얇게 저미려면 날이 길고 얇은 슬라이서를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어를 얇게 저미려면 날이 길고 얇은 슬라이서를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어 얇게 저미려면

염장한 연어를 식칼(날을 잘 벼려서)로 썰어도 괜찮지만 정말 얇게 저미고 싶다면 용도에 맞는 ‘슬라이서(slicer)를 한 점 갖출 만하다. 날이 곡선을 그리는 식칼과 달리 곧고 좀 더 길며 얇다. 그래서 연어나 햄처럼 지방이 풍성하면서도 무른 편인 식재료를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얇고 곱게 저밀 수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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