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번뇌 사라져”

입력
2019.02.18 18:21
수정
2019.02.18 19: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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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안거 오늘 해제하는 

 경북 영천 백흥암 영운스님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시 팔공산 산내 백흥암 심검당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공
동안거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시 팔공산 산내 백흥암 심검당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공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외출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동안거(冬安居). 그 해제를 하루 앞둔 18일 경북 영천시 은해사 백흥암(百興菴)을 찾았다.

백흥암은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대중에 개방되지 않은 곳이다. 이날 언론에 일부를 공개한 선방에는 비구니 승려 13명이 백흥암 선원장인 영운(嶺雲) 스님과 함께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산내엔 죽비 소리뿐이었다. 3~7년 안팎 법력의 승려들이 한겨울을 이곳에서 보냈다.

영운 스님은 기자들과 만나 “스님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 애써서 정진하는 것이 안거”라며 “안거를 통해 중생을 이해하고 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조계종 사찰 100곳에서 2,033명이 참여했다. 영운 스님은 19세 때인 1964년 울산 석남사에서 출가했다. 1967년 첫 안거 이후 안거 이력만 52년째다. 석남사 주지를 지내다 2004년부터 백흥암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조계종의 대표 선승이다.

안거 중 하루 일과는 ‘오직 수행’이다. 백흥암에서는 새벽 3시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정진을 시작한다. 아침 공양 후 오전 7시~10시, 점심 공양 후 오후 1시~4시에도 정진을 이어간다. 오후 7시~10시 저녁 정진까지 합하면 하루 꼬박 12시간을 가부좌를 틀고 혹독한 수행에 임한다. 선원마다 수행 방법은 다르다. 밤새도록 정진하는 용맹정진을 하기도 하고, 말을 금하는 묵언수행을 하기도 한다. 영운 스님은 “선방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며 “바깥에서 아무리 함부로 했던 사람이라도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이켜 본다”고 말했다.

백흥암 선원방 영운 스님은 “경쟁사회에서 서로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자비를 베풀면 경쟁이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공
백흥암 선원방 영운 스님은 “경쟁사회에서 서로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자비를 베풀면 경쟁이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공

백흥암 내 안거 수행 장소는 심검당(尋劒堂)이다. ‘번뇌를 단번에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안거를 통해 정말로 번뇌를 없애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영운 스님은 “안거는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오래된 얘기를 꺼냈다. “석남사 주지 시절, 함께 있던 스님이 다른 스님과 관련해 잘못된 소문을 낸 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서 소문을 낸 스님에게 굉장히 소리를 질렀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세 번 다시 생각해도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스님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고는 번뇌가 사라지고 너무나 개운했어요.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번뇌가 없어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거는 속도와 소음에 짓눌려 사는 현대인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영운 스님은 “사람이 경쟁적이 되고 힘이 드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잘나야 하고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싸울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행하는 스님들조차 서로에게 화를 내는데, 보통 사람들에게 ‘화내지 마세요’라고 말로 하는 게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영운 스님은 ‘한 발우(鉢盂ㆍ승려의 밥그릇)는 피(血) 발우와 같다’는 말을 꺼냈다. “대중의 시주로 먹고 사는 스님이 쌀 한 톨도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현대인은 자기가 돈을 벌어 쓰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건 농사짓는 이들의 수고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기대서, 서로를 고마워하며, 서로 자비를 베풀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영천=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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