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해사이트 차단 “검열” 논란,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문제다

입력
2019.02.19 04:40
31면

정부의 일방적 인터넷 불법 유해사이트 차단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9일 24만명을 넘어섰다. 정부 조치가 인터넷 검열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의 핵심이다. 차단을 해도 우회 방법이 계속 생성되기 때문에 세금낭비라는 의견도 다수다. 리벤지ㆍ아동 포르노의 유포를 막고 웹툰 등의 저작권보호라는 명목에는 동의하지만, 차단 결정의 절차나 방법이 잘못됐다는 청원자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정부가 동원한 것은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 차단 방식이다. 보안이 강화된 ‘https’ 접속 방식의 허점을 이용한 것인데, KT 등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이 SNI 영역에서 주소명이 잠시 드러날 때 정부가 제공한 불법 유해사이트 목록과 대조해 접속을 차단한다.

문제는 차단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누가 언제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려 했다는 정보를 인터넷사업자가 알아내 선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불법 사이트를 지정할 소지도 있다. 정부 비판 사이트 등은 차단당하거나 감시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사업자를 통해 개인 접속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를 검열 등 정치적으로 악용할 개연성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 해 수 백만 건의 인터넷 이용정보가 합법적으로 정부에 제공된다. 더구나 정부 의도와 달리 우회접속 기술은 ‘창과 방패’ 마냥 더욱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불법 음란물의 정의도 모호하다. 외국의 합법 사이트까지 봉쇄하자 “야동 볼 권리를 허용하라”는 집회까지 열렸다. 국민을 미성년자 취급하는 ‘유모국가’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논란과 파장이 큰 사안인데도 선의만 내세워 단 한 번의 의견수렴도 하지 않은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적 유해사이트 차단은 절차와 방법 모두 잘못됐다. 검열 우려가 없도록 예산과 시간이 들더라도 불법 유해사이트만 차단하는 ‘핀셋’ 조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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