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입력
2019.02.18 04:40
31면

국가와 공동체의 집합적 목표가 구성원 개인들의 삶에 대한 열망 혹은 행복과는 무관한 시기가 있었다. 문명사적으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특정한 종교적 가치가 개인들의 삶의 바람직한 모습을 결정하거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엄격한 도덕적 가치 또는 윤리적 의무가 개인들의 일상을 속박하곤 했었다.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가치들의 처음 시작은 아름답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지향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국가의 목표로 설정되는 순간 그 시점에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구성원으로서 시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념적 도구로 사용된다.

피를 수반한 여러 번의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는 선택을 한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가치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의 삶에 대한 열망과 각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서 누리는 효용의 사회적 합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공동체 목표에 대한 새로운 헌법적 결단을 하게 된다. 물론 가치중립적인 국가의 목표가 설정되는 것과 개인으로서 시민들이 각자의 종교를 선택하고 나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오히려 중립적인 국가목표로 인해 도덕, 윤리, 종교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선택들에 대한 기본권들은 더욱 충실하게 보호될 수 있다. 누구도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종교적 가치, 도덕적 의무를 강제할 수는 없다.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삶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는 무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자유와 권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들의 사회적 결집 결과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공동체 전체의 합리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공동체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한 각 개인의 입장에서 각자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한 결과가 공동체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사례는 공유지의 비극 상황, 시장실패로서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상황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이 공동체의 비합리적 선택과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향은 시장에서 경제주체로서 개인들의 선택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정치주체로서 개인들이 내리는 선택들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 위험사회에서 불확실성하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개인들과 국가에 있어서 더욱 가속된다.

개인으로서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합리적 선택들의 상관관계가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어야 한다. 각 개인들의 삶의 목표에 대한 합리적 결정들이 공동체 전체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면 그 개인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 반대로 각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들이 결국 공동체 전체의 비합리적 선택과 비극으로 이어진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들의 선택은 자유와 권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고 국가는 필요한 간섭과 규제를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치 충돌의 상황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정치주체로서 각 개인들과 정치 집단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험한 정치적 투쟁은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법부의 판단,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이어진다. 각 정치 집단의 입장에서는 그로부터 더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 결정에 대한 모든 과정에서 모든 정치 주체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경우를 한번 상상해 보라. 비극과 공멸의 결말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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