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과학] 패딩이 따뜻한 이유는 거위털 아닌 공기층 때문

입력
2019.02.16 14: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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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100만도에서도 태양 탐사선이 녹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인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파커 탐사선’이 지난달 19일 태양 궤도를 도는 첫 번째 임무를 완료했다. 지난해 8월 발사된 이 우주선은 태양 궤도를 여러 번 돌며 조금씩 태양에 가까워져 2025년 하반기 탐사 때는 태양과의 거리 약 640만㎞까지 접근한다. 이 지점은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쪽인 코로나가 있는 곳이다. 온도가 섭씨 100만도에 달한다.

이러한 초고온에도 파커 탐사선이 녹지 않는 건 온도와 열의 차이에 있다. 태양 대기 온도가 높다는 건 그 안의 입자가 매우 활발히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입자 수가 많지는 않다. 따라서 코로나의 온도가 높아도 정작 우주선에 전달되는 열(입자가 전하는 에너지량)은 적다. 실제 NASA는 파커 우주선의 열 차폐막 온도는 1,400도, 각종 관측기기가 있는 내부는 30도 안팎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NASA는 “끓는 물이 담긴 냄비와 뜨거운 오븐에 손을 넣는 차이”라고 설명했다. 오븐보다 온도가 낮더라도 열을 전달하는 입자 수가 많기 때문에 끓는 물이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사용하는 보온병과 패딩 제품에는 이 같은 열 전달을 막기 위한 여러 원리가 숨어 있다.

◇물질마다 차이나는 열 전도율

열은 전도와 대류, 복사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전달된다. 금속 막대의 한쪽 끝을 불에 넣으면 가열되는 부분부터 차례대로 뜨거워지는 것처럼, 전도는 열에너지가 물질의 이동 없이 고온에서 저온으로 전달되는 현상이다. 물체마다 열전도율이 다르다. 열전도율은 단위 면적(㎠)ㆍ두께(㎝)ㆍ시간당(초) 통과하는 열량으로 계산하는데, 은이 0.99㎈, 알루미늄 0.92㎈, 철 0.17㎈, 콘크리트 0.002㎈, 공기 0.000057㎈다.

대류는 액체와 기체에서 가열된 입자가 이동하면서 열이 전달되는 것을 일컫는다. 물을 오래 끓이면 방 안의 온도가 올라가거나, 뜨거운 국을 식히기 위해 수저로 젓는 행위 등이다. 복사는 매개체가 없어도 적외선ㆍ자외선 등의 형태로 열이 전달되는 현상이다. 텅 빈 우주공간을 통해 태양열이 지구로 오는 원리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패딩 보온의 핵심은 공기층

패딩은 이 세 가지 방법 중 열 전도를 막아 보온 효과를 높이는 옷이다. 패딩 안에 들어 있는 거위털과 오리털 등 충전재 때문에 입으면 따뜻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보온 역할을 하는 건 털이 아니라, 공기다. 아웃도어 브랜드 K2의 이양엽 부장은 “탁구공 크기 정도로 동그랗게 말린 거위와 오리의 솜털이 서로 얽히면서 빈 공간 사이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된다”며 “공기층이 일종의 벽 역할을 해 외부 냉기가 안으로 들어오거나, 체온으로 데워진 내부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다른 물체에 비해 열 전도도가 매우 낮은 공기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집 창문에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을 붙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위와 오리의 깃털을 의류 등에 넣을 충전재로 가공한 걸 우모(羽毛)라고 한다. 솜털은 거위ㆍ오리의 턱 밑에서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부위에서 주로 뽑는다. 날개와 다리에서 뽑은 깃털도 충전재로 사용하지만 동그랗게 말린 형태가 아니라 길게 뻗어 있어 공기층을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같은 털이라도 솜털 함유량이 높아야 보온성이 우수해진다는 뜻이다. 이 부장은 “날씨가 습하거나 땀을 흘리게 되면 우모가 수분을 머금으면서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줄어 보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화학섬유로 만든 인공충전재는 수분 흡수력이 낮아 특히 겨울철 산에 오를 때는 인공충전재가 들어간 패딩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양을 넣었을 때 인공충전재와 일반 솜털이 부풀어 오르는 정도(FPㆍ필파워)를 비교한 사진. FP가 높을수록 보온성이 더 뛰어나다. 프라우덴 제공
같은 양을 넣었을 때 인공충전재와 일반 솜털이 부풀어 오르는 정도(FPㆍ필파워)를 비교한 사진. FP가 높을수록 보온성이 더 뛰어나다. 프라우덴 제공

인공충전재 역시 공기를 가두는 게 핵심 기술이다.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섬유 중심에 구멍이 난 중공섬유를 주로 사용해 만든다. 다만 충전재를 압축했다가 부풀어 오르는 정도(Fill Powerㆍ필파워)는 인공충전재가 솜털보다 떨어진다. 같은 보온성을 내려면 더 많은 인공충전재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무게도 무거워진다.

◇보온병 뚜껑에 ‘뽁뽁이’가 들어가는 이유

패딩이 열 전도를 막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보온병은 열이 이동하는 세 가지 이동방식 모두를 차단하는데 중점을 뒀다.

보온병 구조를 보면 외벽과 내벽이 있고 그 사이가 진공상태로 돼 있다. 열을 전달할 공기 분자 등이 없어 열 전도가 이뤄지지 않는다. 보온병을 진공병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공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보온병의 성능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또한 최근 들어 가벼운 보온병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제조사들은 진공상태로 이뤄진 내ㆍ외벽 간격을 줄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보온병. 락앤락 제공
보온병. 락앤락 제공

보온병 뚜껑을 열어보면 내용물을 담는 내벽이 동(銅) 도금 등 특수 코팅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의 윤혜진 차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가 뜨거운 커피 등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거울처럼 반사시켜 열이 손실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보온병이 일반 병보다 가격이 비싼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보온병 뚜껑도 열 전달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한다. 락앤락이 제조하는 보온병은 뚜껑이 단열재인 스티로폼-에어캡-스티로폼 구조로 이뤄졌다. 윤 차장은 “뚜껑의 바로 안쪽 온도와 병 내부의 온도가 차이 나면 대류가 일어나 열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온병 뚜껑이 일반 플라스틱으로만 이뤄졌다면 보온력이 떨어진다. 작은 병이지만 내벽에 동 도금 등으로 열 복사를 차단하고, 내벽과 외벽에 진공상태를 만들어 열 전도를 막으면서 뚜껑에 단열기능을 넣어 대류 현상까지 방해하는 게 보온병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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