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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출신으로 화려한 데뷔… 10년 전 마약사건으로 나락에
지난해 ‘신과 함께’에 이어 올해 ‘킹덤’ ‘아이템’에 출연
탄탄한 기본기에 노력을 더해… “대본 100번 이상 읽어요”
배우 주지훈. 넷플릭스 제공

시작은 창대했다. 배우 출발선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입헌군주제 한국을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궁’의 이신처럼 방송계의 황태자로 바로 떠올랐다.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변호사(KBS2 드라마 ‘마왕’)를 맡아 연기력 호평도 받았다. 모델 출신의 훤칠한 외모, 불량한 듯하면서도 반듯한 인상은 그만의 무기였다. 꽃길만 걸을 듯한 대형 유망주는 연기 생활 3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년 마약 투약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재기는커녕 복귀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한동안 마약 사범 출연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10년이 지났다. 주지훈이 출연한 ‘신과 함께: 죄와 벌’과 ‘신과 함께: 인과 연’(‘신과 함께2’)이 1,000만 관객을 잇달아 모았다. 그는 두 영화에서 서러운 전생을 품고 사는, 까칠한 저승차사 해원맥을 연기하며 웃음과 서늘함과 감동을 안겼다. ‘신과 함께2’와 함께 지난해 여름 흥행대전을 펼친 ‘공작’에서는 북한 엘리트 장교 정무택을 연기했다. 교활하고 거만하고 의심 많은 이 인물로 부일영화상과 올해의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연기 스펙트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암수살인’에서는 베테랑 형사와 게임을 즐기는 연쇄살인범 강태오 역을 맡아 소슬함을 빚어냈다. 주지훈은 ‘암수살인’으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드라마틱한 삶이 적지 않은 방송ㆍ영화가에서도 이런 인생 반전은 흔치 않다.

영화 '공작'에서 정무택을 맡은 주지훈. CJ ENM 제공
영화 ‘암수살인’에서 살인범 강태오를 연기한 주지훈. 쇼박스 제공

주지훈은 요즘 여의도와 충무로에서 대세 배우 중 한 명으로 통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1을 지난달 선보이더니 MBC 드라마 ‘아이템’으로 11일부터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물 ‘킹덤’에서는 조선 왕세자 이창을, SF물 ‘아이템’에선 신비한 물건을 지닌 검사 강곤을 각각 연기한다. 연출자가 믿고 쓸 수 있는 배우이기에 가능한 캐스팅이었다. 정석희 드라마 평론가는 “주지훈을 처음 ‘궁’에서 봤을 때만 해도 모델 출신의 외모로 왕자 역에 캐스팅된 배우 정도로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바로 차기작인 ‘마왕’에서 파도가 치는 듯한 격렬한 감정 연기뿐 아니라 초연한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줘 배우로서 캐릭터 해석 능력이 뛰어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전의 계기는 다부진 기본기에서 나왔다. 주지훈은 영화ㆍ방송가에서 발성이 좋은 배우로 통한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무기 삼아 사극('간신')부터 시대극('공작')까지 넘나든다. 모델 출신 청춘 스타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뮤지컬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이 아닌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목소리를 틔웠다는 얘기다. 그는 2009년 뮤지컬 ‘돈 주앙’으로 무대에 처음 오른 뒤 2010년 군 복무 시절 ‘생명의 항해’로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주지훈은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할 줄 아는 배우다. 그는 짝눈이다. 왼쪽 눈이 오른쪽보다 더 크다. 연출자들은 그 눈이 화면에 담길 때 느낌이 다르다고 말한다. 드라마 ‘킹덤’의 김성훈 감독은 “불안한 모습의 세자가 민초를 만나면서 강건해지는 과정을 담을 수 있는 배우를 찾았다”며 “주지훈은 카메라가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짝눈을 가지고 있기에, 두 모습 모두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지훈은 “얼굴 좌우 이미지가 달라 연기할 때 그 반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눈이 쳐져서 짝눈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오히려 약점을 반겼다.

드라마 '킹덤' 세자 역을 맡은 주지훈.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아이템' 주연을 맡은 주지훈. MBC 제공

주지훈은 노력파다. 그는 ‘간신’을 찍을 때 대본을 통째로 150번을 읽고 촬영에 임했다. 작품이 시작되면 대본을 200번은 읽는다는, 영국의 연기파 배우 앤서니 홉킨스 얘기를 듣고 난 게 계기였다. 그는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다. 주지훈은 ‘암수살인’을 찍을 때 응급실 신세를 졌다. 사투리 대사를 잘 소화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에 위경련이 온 탓이다. ‘킹덤’ 시즌1이 공개된 직후 일주일 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후기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기도 했다. 그는 “비판에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무시하기보다는, 약점을 인정하고 한 번 되짚고 곱씹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기나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그는 매번 유쾌하고 발랄하다. 시사회장에선 엉뚱한 모습으로 시선을 모으고, 촬영장에선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그는 “숙취에 장염까지 걸려 힘들어도 웃겨줘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발랄하면서도 엉뚱한 성격 덕에 그에겐 현실에선 보기 어려운 판타지 배역이 유독 몰린다.

덜렁거릴 것 같은 선입견과 달리 주지훈은 어려서 책을 즐겨 읽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오락기 대신 아들 손에 책을 쥐어줬다고 한다. 주지훈은 2006년 ‘궁’ 관련 인터뷰에서 “집에 책이 1,000권 넘게 있다”고 말했다. 주지훈을 10여 년 동안 지켜 본 연예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주지훈이 모델 활동을 할 때도 가방에 책을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고 하더라”며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대본을 주면 배역과 관련된 인물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작품에 대한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번 밀리면 정상에 다시 오르기 힘든 게 연예계 생리. 일찌감치 부침을 겪은 이답게 그는 뒤늦게 맞은 전성기를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사랑을 받아 너무 기쁘지만, 동시에 겸허하게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되뇝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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