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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토종브랜드가 불안하다. 지난달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토종브랜드 ‘르까프’의 화승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소비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곁을 지켰던 토종브랜드와 작별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해외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토종브랜드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비결을 살펴본다.

20년 전 모델을 새롭게 탄생시켜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휠라의 ‘디스럽터2’. 휠라 제공
◇틈새시장 공략…변화무쌍한 소비심리 잡았다

화승의 르까프와 함께 거론되는 토종브랜드가 LS네트웍스의 프로스펙스다. 태생이 같은 형제와 다름없는 브랜드이지만, 현재 둘의 상황은 정반대다. 부산에서 탄생한 두 브랜드는 고무신을 먼저 세상에 내놓으며 국내 신발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왕자표’ 고무신을 생산하던 국제상사는 1981년 프로스펙스를 출시했고, ‘기차표’ 고무신을 팔던 화승은 5년 뒤 르까프를 선보였다. 두 형제는 ‘국민 운동화’ 열풍까지 만들며 전성기를 누리다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날개가 꺾이고 만다.

그러나 프로스펙스는 한일그룹 등을 거쳐 2007년 LS네트웍스에 안착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2008년 제주 올레길 열풍이 결정적이었다. 산책로 걷기가 확산되자 발빠르게 워킹화로 승부를 걸었다. 프로스펙스는 2009년 워킹화를 출시했고 틈새시장 전략은 통했다. 지금도 ‘워킹화하면 프로스펙스’가 떠오를 정도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2012년 프로스펙스의 모델이었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배우 김수현을 내세운 ‘W연라라인’ ‘W수현라인’은 당시 300만켤레 이상 팔렸고, 2015년 500만켤레 판매를 돌파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해외 브랜드들의 공세와 ‘인터넷 해외직구’도 프로스펙스의 콧대를 꺾지 못했다.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스포츠브랜드 휠라는 2007년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인수하면서 한국 기업이 됐다. 2016년 국내 적자(310억원)로 흔들리긴 했지만, 최근 휠라는 ‘대세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투박한 디자인의 ‘디스럽터2’ 운동화가 출시 1년 만에 국내에서 200만여 컬레, 해외에선 800만 켤레 이상 팔렸다. ‘디스럽터2’는 20여년 전 세상에 나왔던 ‘디스럽터’의 새 버전이다. 오래되고 촌스러운 이미지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최근 10,20대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르자 아예 ‘밀레니얼’(1980~2000년대 출생한 인구집단) 세대를 공략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젊은 층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가격도 확 내렸다. 중국에 휠라 글로벌 소싱센터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국내 청바지업계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토종브랜드 뱅뱅은 아이돌그룹 출신 배우 유이(왼쪽)와 박형식이 모델로 나서고 있다. 뱅뱅어패럴 제공
◇내수 집중 유통채널 따라 제품 세분화

청바지와 속옷 시장도 스포츠 브랜드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하다. 리바이스, 게스 등 해외 브랜드가 점령한 청바지 시장은 1970년대 동대문 시장에서 출발한 뱅뱅어패럴의 브랜드 뱅뱅이 국내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7년 매출이 1,000억원에 달한다. 경쟁 브랜드 리바이스를 출시하는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의 2017년 매출은 549억원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뱅뱅의 승승장구 비결을 놓고 ‘철저하게 내수에 집중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토종브랜드의 특성을 살려 ‘한국형 청바지’ 생산에 집중한 것이다. 너무 길거나 폭이 좁은 디자인보다는 편안한 소재로 기본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장점이다. 디자인에 편차가 없어 유행을 타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외환위기 때 휘청하긴 했지만, 2000년대부터 홈쇼핑에 진출해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를 재정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60년 역사를 가진 토종 속옷 브랜드 남영비비안도 빅토리아시크릿, 원더브라 등 유명 해외브랜드와 유니클로, H&M 등 SPA브랜드들이 내놓은 저가 속옷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비비안은 유통 채널에 따라 세분화한 상품을 출시해 제품의 명성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는 전략을 짰다. 백화점이나 전문점에는 주력 브랜드인 ‘비비안’을, 대형마트에는 ‘드로르’, 홈쇼핑에는 ‘로즈버드’로 유통 채널에 맞게 브랜드를 세분화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토종 브랜드의 강점은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해 구매 충성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르까프의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신규 토종브랜드가 더 생길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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